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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가 설명하는독서의 중요성 02

독서가 만드는 공부의 역량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마술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한텐 너무 어려운 문제인데 쓱쓱 풀어냅니다. 또 똑같이 처음 보는 내용인데 한두번 가볍게 읽고 나서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버립니다. 이런 마술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이 아이들이 매우 잘 발달된 ‘역량의 네트워크’를 두뇌에 탑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공부의 영역에서만 역량이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백종원 대표를 볼 때마다 역량의 중요성을 절감하곤 합니다. 아프리카의 나라에서 처음 보는 음식을 먹어보고도 이게 대충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쉽게 파악하고, 재료가 완벽히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비슷하게 따라해내죠. 예를 들어, 백종원 대표가 민트 대신 깻잎으로 모히토 칵테일을 만들어 내는 것 처럼요(깻잎과 민트는 친척인데, 백종원 대표가 알고 한 걸까요?). 요는 이 역량이라는 것이 단순히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의 문제를 넘어서는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잘 발달된 역량의 네트워크는 첫째, 처음 접하는 정보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둘째, AI 시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점은 아마 이것일 텐데요, 역량은 습득된 정보를 유연하게 연결시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능력의 기반이 됩니다. 쉽게 말해 대학에서 그토록 찾는 창의성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역량은 우리의 두뇌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위에서 제가 ‘역량의 네트워크’라는 말을 썼는데요, 이 역량이란 것은 우리 두뇌의 겉껍질(neocortex) 전반에 마치 그물과 같은 거대한 망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구 얼기설기 얽혀져 있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정보들끼리 서로 더 조밀하게 얽혀져 있는 ‘조직화된 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치 촘촘한 그물이 물고기를 잘 잡듯이, 잘 조직된 촘촘한 ‘역량의 네트워크’는 새로운 정보를 쉽게 흡수하고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역량은 공부를 위한 ‘기초 체력’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잘 발달된 근육과, 훈련을 통해 전신의 근육을 적절한 타이밍에 조직적으로 사용(협응)할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운동의 기본이 되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역량의 그물망을 잘 발달시킬 수 있을까요? 마치 근육처럼 역량도 쓰면 쓸수록 잘 발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좀 더 중요한 핵심은 ‘그물망’이라는 용어에 있습니다. 역량의 그물을 촘촘하게 잘 길러내기 위해선, 최대한 “그물 전체를 유기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을 잘하기 위해선 수많은 기술들의 자연스런 협응이 필요합니다. 차선을 부드럽게 바꾸기 위해선, 사이드 미러로 옆 차선에 달려오는 차를 보면서, 오른손은 기어 조작을 해야 하고, 발로는 엑셀과 브레이크를 정교하게 컨트롤해야 합니다. 그뿐인가요? 주위의 도로 사정과 전체적인 차량들의 흐름도 잘 파악해야 차선 변경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운전의 실력은 어떻게 늘까요? 실제 도로에서 운전을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유튜브에서 차선 변경 영상을 보고, 평행 주차 공식을 외워도 실제 운전 실력을 늘리는 데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역량이라는 그물은 전체적으로 발달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선 역량 전체를 최대한 전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위한 역량 역시 마찬가지이죠.

하루 종일 학원을 돌고, 밤늦게까지 숙제를 해도 공부가 늘지 않는 아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 공부하면 당연히 공부 실력이 늘어야 정상이지 않을까요? 답이 혹시 보이실까요? 네, 공부가 잘 늘지 않는 이유는 역량이라는 공부의 기초체력은 그것이 ‘전체적’으로 쓰여질 때 효과적으로 발달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학교 공부는 안타깝게도 충분히 전체적이지 않습니다(혹은 지나치게 집중적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 과목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분명 이런 식으로 공부할 겁니다. ‘문화란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 체계를 말한다. 문화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이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좋습니다. 깔끔하고 간결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너무나 단순해서 아이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역량의 네트워크를 굳이 작동시킬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역량이란 그물 전체에 스위치가 켜져야 그물이 커지거나 촘촘해지거나 할 텐데, 학교 공부에는 그럴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기초체력을 기를 기회가 없는 타입의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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