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어떻게 생각의 힘을 높일까
드디어 돌고 돌아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왔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결론이 아마 짐작이 되실 겁니다. “공부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 독서는 매우 훌륭한 도구이다.”라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책이라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교양서적’, ‘대중서’라고 부르는 책들이 보통 매우 넓은 범위의 주제를 다루고, 교과서보다 훨씬 풍부한, 어찌 보면 덜 집중된 형태의 정보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문화’의 예로 돌아가 볼까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수많은 사례, 비유,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문화가 어떻게 학습되고 전달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 뿐이다. 푸조는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신부가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야릇한 주문을 외우면 빵은 그리스도의 살로 전환된다......(사피엔스 중 일부 발췌)”
그 어마어마한 분량 속에 ‘문화’, ‘학습’이라는 직접적인 용어가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문화가 학습되는 과정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자동차 회사 푸조, 석기 시대의 주술사, 성경이나 불경 속 에피소드, 핵폭탄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에 대한 스토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러나 풍부하게 전달됩니다. 책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이러한 함축적인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쩌면 즐겁게) 자신이 가진 지식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무의식적인 과정 속에서 공부의 기초체력이 되는 ‘역량의 네트워크’가 커지고 촘촘해지고, 효율적으로 조직화됩니다.
좋은 건 알겠는데, 이 ‘역량’이란게 시험 성적에 정말 중요할까요? 물론입니다. 또다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파슨스와 스멜서는 성스러움을 가치라는 말로 바꿔 표현한다. 현대 사회에서 가치가 평상시 사회적 삶 아래에 잠재되어 있다가, 그 도덕적 의미가 뿌리부터 뒤흔들리는 위기 시기에 위로 올라와 일반화된다. 속된 일상에서 사람들은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이해관계를 구체화한 목표와 이의 실현을 안내하는 규범에 따라 살아간다.”
2017년 수능 국어 지문 중 일부인데, ‘문화를 구성하는 믿음 체계가 특수한 경우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사회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한 저도 이해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이런 지문을 시험장에서 몇 분 안에 독해하고 문제를 정확하게 푸는 것이 요새 우리 아이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때 기존에 갖고 있는 촘촘하고 잘 조직된 역량의 네트워크가 놀라운 위력을 발휘합니다. 사피엔스와 같은 책을 통해 문화적 학습에 대한 충분한 역량을 기른 아이들은 제시문의 생소한 정보를 문화 학습과 관련한 기존의 역량 네트워크 안에 “통합”하면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제시문의 정보를 ‘쌩으로’ 이해해야 하는 아이들에 비해 독해의 질이나 속도, 적용의 효율성에서 어마어마한 격차를 갖게 되는 겁니다. 보통의 아이들의 눈으로 볼 때, 이런 아이들은 마치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겠죠.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기초를 스킵하고 빨리 가려는 노력은 대부분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저는 오랜 동안의 대학과 연구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절감했습니다. 두 아이를 기르는 아빠로서 저도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는 모습을 보이길 원합니다. 또 아이들이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면 저 역시 몹시 불안합니다. 하지만 앞서는 것은 굳이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커가는 시기에 무엇보다 많은 책을 접할 수 있게 도울 생각입니다. 결국 모든 공부의 기초 체력은 결국 독서를 통해서 길러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