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출과 기억의 과학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뇌 과학
지난 글(https://brunch.co.kr/@96d4929c76b8441/6)에서 저는 공부는 “역량 × 인출”이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어떤 주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고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지(역량), 그리고 그 지식을 불러내서 시험이라는 세팅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인출)에 의해 성적이 결정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아이들이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대학에서도 단순히 높은 시험 성적이 아닌 뛰어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고자 수많은 전형 방법을 고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점수로 나타나는 시험 성적도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가진 실력이 잘 발휘가 안 되면 이것처럼 애석한 일이 없을 겁니다.
이 글에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뇌과학적 원리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떤 도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요새 많이 쓰는 인덕션은 자기장을 이용해 냄비를 가열하는 방식이죠. 따라서 자기장에 잘 반응하지 않는 알루미늄 팬을 쓰면 요리가 될 리가 없겠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최고의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시험이라는 세팅에서 뇌가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인출해내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뉴런이 알려주는 공부의 원리
우리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뉴런들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서로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1000억개의 뉴런들이 서로 1000조개 정도의 연결을 이루고 있으니 그 복잡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은하의 수는 2조개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런 우주적인(!)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뉴런에서 일어나는 학습의 원리는 자체는 매우 간단합니다. 자, 이제 한 뉴런을 단순하게 동그라미로 그릴께요. 한 뉴런에서 전기 신호가 켜지면(활성화되면) 흰색, 꺼지면 검은색으로 표시할께요. 두 뉴런 사이의 연결이 강해지면 학습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역사 시험을 위해 ‘중세-노틀담’를 반복적으로 외운다고 가정해 볼께요. 이야기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여러분의 뇌에 ‘중세’라는 단어를 보면 활성화(전기 신호가 켜지는)하는 뉴런, ‘노틀담 ’이란 단어를 보면 활성화하는 뉴런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뇌과학이 밝혀낸 가장 중요한 원리는 “같이 활성화된 뉴런들 사이의 연결은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전제하고, 여러분이 ‘중세-노틀담 성당’을 반복적으로 외우면, 이 두 뉴런 사이의 연결이 점점 강해집니다. 이와 같이 경험에 따라서 뉴런들 사이의 연결이 변화하는 과정을 ‘학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변화된 뉴런들 간의 연결 자체를 ‘기억’, 좀 더 전문적으로는 ‘기억의 흔적(memory trace)’이라고 합니다. 학습이 일어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시험에서 ‘중세’라는 단어가 나오면, 중세 뉴런과 노틀담 뉴런 사이에 이미 강해진 연결 때문에, 노틀담 뉴런이 자동으로 활성화되고, 여러분은 “노틀담!”이라고 정답을 ‘인출’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칠 수 있는 게 다 학습의 결과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