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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통계학적 해석

대다수의 행복 추구가 틀린 이유

행복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기준선으로 되돌아가는 힘, 마치 중력처럼 늘 우리를 제자리로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에 가깝다.
이 점에서 나는 ‘회귀 이론(regression to the mean)’이라는 통계적 개념이 우리의 감정 궤적, 특히 행복이라는 정서를 설명하는 데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회귀 이론은 극단적인 경험 이후에는 다시 평균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아주 특별한 성과나 실수를 냈을 때, 그것은 일시적인 변동일 가능성이 크고, 다음 번에는 다시 평범한 결과로 회귀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행복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큰 상을 받거나 연애를 시작했을 때 느끼는 극적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실연이나 실패에서 오는 고통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잦아든다.
우리의 감정은 평균을 중심으로 진동한다. 이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행복 기준선(set point)’ 가설과도 일치한다.

이 원리를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물리적 장치가 있다.
바로 **갈톤보드(Galton Boar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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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갈톤보드를 따른다

갈톤보드는 수직으로 놓인 판에 못이 일정 간격으로 박혀 있고, 그 위로 쇠구슬을 떨어뜨리면
구슬은 무작위로 좌우로 튕기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바닥에 도달하면 중앙을 중심으로 종 모양의 분포를 이룬다.
극단적인 좌측이나 우측 구간에는 소수의 구슬만 도달한다.

이 장치는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무작위성 속에서, 모든 경로는 평균을 향해 수렴한다."


행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삶의 사건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 속에서 일어난다.
구슬이 튕기듯, 우리의 감정도 외부 환경과 내부 상태에 의해 계속 변화한다.
하지만 결국 그 결과는 평균선 위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나 큰 사고를 당한 사람 모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 수준의 행복감으로 돌아온다는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예측"은 틀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세에서 자가로 옮기면 행복해질까?, 아이가 서울대를 입학하면 행복해질까?, 원하는 그녀, 그를 얻게되면 행복해질까? 입시에서 실패하면 불행해질까? 승진에서 미끄러지면 불행해질까? 아무리 대단한 이벤트도 결국 그 영향력은 수많은 변수들의 상호작용이라는 거대한 힘 안에서 무화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원래만큼 행복해질 수 밖에 없다.


행복에 대한 우리의 예측은 왜 부정확할까?

이 글을 쓰는 나도 서울에 자가가 생기면 인생이 장미빛이 될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을 갖고 있다. 나의 이성은 그게 틀린 예측이란 걸 말하지만, 나의 본성은 "서울에 자가가 생기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너의 인생은 행복해질거라고" 외친다. 솔직히 이 본성의 외침은 너무 강력해서 알고도 속는 수 밖에 없는 수준이다.

왜 그럴까? 실은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때, 많은 수의 변수를 동시에 고려하지 못한다. 왜 아니겠는가. 실험 결과를 분석할 때도 독립변수 3개만 돼도 나 같은 보통의 인지 수준을 가진 사람들에게 3개 변수의 상호작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대신 우리의 뇌는 무엇인가를 떠올릴 때 "얼마나 그것이 생생하게 떠올려지느냐"로 예측의 정확성을 판단하려는 뿌리 깊은 성향을 갖고 있다. 서울 상급지에 자가를 떠올려본다. 매달 내야하는 월세, 이사에 대한 압박, 아이들 학교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다. 상급지에 사는 상류층이라는 은근한 자부심, 매년 수억씩 올라가는 자산가치. 너무나 생생한 이미지라서 도저히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나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언제나 빈곤한 우리의 상상력보다 훨씬 깊고 넓다. 상상하지 못한 수많은 변수(예: 건강)들 안에서 우리가 상상한 결과의 영향력은 한없이 미미해질 수 밖에 없다.


행복을 위한 추구는 무의미할까?

이 결론은 우리가 행복해지고 하는 모든 추구가 무의미하다는 걸 의미할까? 아니, 결론은 훨씬 긍정적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감정의 회귀 패턴을 인식할 수 있고, 나아가 그 평균선 자체를 조정할 수 있는 존재다. 쉽게 말해 우리는 삶의 무작위성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갈톤보드의 공이 행복쪽(예: 오른쪽)으로 약간이라도 치우치게 하는 특별한 핀들을 조금씩 박아 넣을 수 있다. 공이 행복 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핀을 다수 거치면 거칠 수록 우리의 행복은 조금씩 늘어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빈도"이다. 즉 대단한 하나의 핀(예: 로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사소한 핀이 "다수"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런 행복을 위한 핀이 될까?


해답은 사실 조금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갖는 즐거운 식사"

"감사하려는 습관"

"더 자주 아이들을 안아주고, 같이 웃어주려는 노력"

"주위를 조금이라도 챙기려는 습관"


이러한 별볼일없어 보이는, 그러나 확실히 공을 행복쪽으로 옮겨주는 다수의 핀을 삶에 배치할 수록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그러나 확실히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통계학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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