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문 고등학교의 인재상을 한번 떠올려보자. 어떤 어휘가 포함될 것 같아? '소통', '전인적', '열정' 뭐 이런 말들이 들어갈 것 같지 않아? 십중팔구로 들어갈 것 같은 어휘 중에 하나가 바로 '창의력'일 거야. 현대는 '창의력'의 시대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거야. 소수의 창의적 천재들이 조 단위의 부를 만들어내는 시대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몰라. 그래서 요즘 '암기'는 마치 소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교육계의 금기어가 되어버린 느낌이야. '암기를 잘하는 인재'를 외치는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고, '우리 학원은 암기 중심으로 교육시킵니다'라고 말하는 곳도 거의 없어. 다들 이렇게 말하지. “이제 암기가 아닌 창의력의 시대야.”라고. 하지만 너와 나,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실제 입시에서, 특히 내신에서 암기는 필수라는 걸.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주장이야. 암기는 모든 사고의 기초 재료야. 벽돌 없는 만리장성이 불가능하듯, 암기 없는 창의력이란 존재할 수 없어. 축구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축구를 잘 하려면 단순히 공을 멀리 잘 차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거야. 달리기, 볼 컨트롤, 팀원들과의 협응, 전술에 대한 이해,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에야 정말 축구를 잘할 수 있지. 하지만 달리기를 하지 않고 축구를 잘할 수는 없어. 아무리 귀신같이 전략을 잘 이해해도, 팀원들의 움직임을 아무리 눈으로 본 것처럼 그려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리가 따라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야. 공부도 마찬가지야. 공부는 사실 축구처럼 ‘복합 스포츠’야. 공부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수업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관리도 잘 해야 하고, 자신의 공부 전략도 효율적으로 세워야 하며,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원만할 필요가 있어. 또 입시 시스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암기’가 안 되면 쓸데없는 이야기가 돼. 축구의 ‘달리기’처럼 말이야. 이해력, 창의력, 공부 전략, 이 모든 것은 결국 ‘기억’이라는 근육이 빵빵할 때 의미 있는 얘기야. 다들 찬양하는 창의성이라는 특수한 사고도, 사실 이미 기억 속에 있는 재료들의 새로운 조합인 경우가 대부분이야. 다들 스티브 잡스가 가져온 '스마트 폰'을 위대한 혁신의 대표적 예시로 이야기하잖아. 근데 잘 생각해보면 '스마트 폰'은 기존의 휴대폰에 인터넷이란 기능을 조합한 것에 지나지 않아.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란 없어. 다만 오래된 기억 조각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만나면서 '창의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지. 그러니 풍부한 기억 자산 없이 '창의적 인재'를 부르짖는 것은 공허한 짓이야. 빈 창고에선 어떤 물건도 꺼낼 수 없듯, 텅 빈 머리에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나올 수가 없어. 자 이제 기억이라는 뇌의 '창고'에 기억이 쌓이는 원리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할께. 구체적으로 뇌라는 도구가 어떻게 정보를 저장하고, 왜 저장된 기억을 잃어버리는지, 망각을 어떻게 예방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볼께. 그리고 그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어떻게 '암기를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 방법도 알려줄거야. 이제 기억이 처음 만들어지는 장소, 해마로 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