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낸 짐의 행방
한국에서 9월 말에 부친 짐이 부산항에서 배에 실려 넓고 넓은 태평양을 건너 LA 공항에 도착, 세관을 통과하고 이제 트럭으로 워싱턴주로 주인을 찾아 신나게 20시간을 달려오고 있다. 그냥 별 탈 없이 받았으면 무덤덤한 기분이었을 텐데 지난 두 달간 우여곡절 끝에 모든 걸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기분이어서 살림살이 하나하나가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모른다.
비싼 H회사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약간 가격이 싼 해외이사회사와 마지막 엎치기 계약을 했는데 부장님께서 신경을 잘 써주셔서 전화와 카톡, 이메일로 소통하며 한국에서 짐을 보내는 것까지 아주 수월히 잘 끝냈다. 미국에 오느라 내 전화번호를 중단하고 카톡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메시지를 주고받고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에 도착해서 부장님께 카톡을 보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거다. 처음엔 별 문제가 없겠지 담담하게 생각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카톡을 보내고 이메일을 보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부장님이 직접 집으로 와서 견적도 내고 브로셔도 가지고 오셔서 회사를 의심하진 않았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회사를 찾아보니 직원이 6명인 아주 작은 회사였고 대표이메일도, 대표 전화도 내가 계속 연락을 하던 이메일과 전화번호였다.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아... 그렇게 좋으신 분이셨는데 어쩜 갑자기 이렇게 돌변 상황이 생길 수 있을까?
아들네 집으로 들어와 살 거라는 생각에 살림살이를 많이 줄이고 또 많은 사람들과 와인 글래스며 미국에서 구입한 부엌살린음 많이 나누었음에도 이렇게 덧없이 잃을 거였으면 더 많이 주고 나눌 걸 후회가 막심했다. 내가 마치 애국자라고 된 양, 한국을 소개하고자 마지막 남대문을 돌며 챙긴 외국인들에게 한국 소개할 다양한 물품들도 다 헛된 생각이었고 그간 챙겨둔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와인과 브랜디도 다 나눠주고 올걸 후회가 막심했다. 별의별 생각을 하며 인터넷으로 비슷한 상황이 있는지 알아보는 동안 나처럼 해외로 이삿짐을 보내고 속을 태운 수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한 번은 EU대사님과 함께 티타임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사님께서 싱가포르주재 EU 대사를 지내실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의 유품을 이삿짐 회사에 의뢰해서 싱가포르로 보내기로 되어있었다고 하셨다. 모든 유품은 트럭에 실려 다음날 배로 옮기기 위해 바르셀로나 항구 주차장에 세워졌다. 한 밤중에서 원인 모를 불로 트럭과 그 안에 실린 모든 물건들이 형체도 없이 다 타고 말았고 소규모의 이삿짐회사는 대사님 어머님의 소중한 유품을 다 태우고 연락을 끊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대사님은 보상은 커녕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자세히 모른 채 어머님의 유품을 황당하게 잃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2000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알칸소에서 시애틀로, 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짐을 끌고 다니면서 생긴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실의에 빠져 고민을 하다가 마지막 방책으로 아시는 분께 부탁하여 부장님께 전화요청을 드렸다. 그분이 전화를 하니 부장님은 전화기에 이상이 생겨 전화는 되는데 카톡이 안된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듣게 되었다.(그럼 이메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일로 나의 마음고생은 끝나고 회사 여직원이 이삿짐은 지금 태평양을 건너고 있는데 약 15일간 지연이 될 거라는 짧은 이메일로 상황을 설명해줬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거의 잃어버릴 뻔 한 나의 평생 살림살이를 내일 받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게 안전하게 도착하길 바라며 식구들과 크로아티아산 Aura Teranino 테라니노 레드와인 리커를 따서 축하주로 마실 생각이다.
본인의 살림살이가 넓은 태평양 바다에 둥둥 떠 다닌다는 상상을 할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이 글을 읽으면서 주말 오후 뚱딴지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내 옆을 지켜주며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작은 살림살이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한 번쯤 가져보자.
큰 배에 24,000개의 컨테이너가 실린다고 한다. 그 중 한 컨테이너의 1/8을 차지하는 내 살림살이를 잃었다고 그걸 기억할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우리의 인연이 질겨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너무나 고맙고 내일 만남이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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