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일 차 / 벨로라도~아헤스)
오늘(10.4)은 벨로라도(Belorado)를 출발하여 ▷ 아헤스(Ages)까지 총 27.7km를 4만 3천 보를 6시간 가까이 걸었다. 평탄한 길이지만 장거리라서 힘들었다.
새벽에 호스텔을 나와 여명을 안고 순례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도 발뒤꿈치와 발가락에 반창고를 붙이고 걸어야 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행진을 계속하였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2시간 동안 키의 세 배나 되는 내 그림자와 동행하였다. 그림자뿐만 아니라 이정표와 야고보 성인도 함께 걸었다. 미리 준비해 간 빵과 주스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햇볕에 타서 새카맣게 탄 얼굴을 이지만 살이 익는 것을 방지하려고 아내와 나는 우산을 양산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10여 명의 길동무들은 어제 같이 걸었던 사람들이다. 서양인들은 거의 중년 이상 되었고, 동양인은 젊은 일본인 커플과 한국인은 우리뿐이다. 서양 사람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한국 사람이 많은 이유를 물었다.
사실 이 시즌에 동양인은 한국인이 가장 많았다. 코리아의 국교가 가톨릭이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은 한결같다. 매스컴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프로가 많았고… 이제는 순례자들이 자기 체험을 유튜브 동영상으로 만들어 소개하기 때문이라고.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들은 청년층이 많았지만 서양인 순례자들은 노년층이 많은 점이 차이였다. 미국 보스턴에서 온 76세의 할머니가 72세인 나의 우쭐한 패기를 꺾어버렸다. 나이 많은 서양 순례자들은 나보다 훨씬 씩씩하게 잘 걸었다.
숲길이 12km나 평탄하게 이어져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 순례자 대여섯 명이 택시를 불러 타고 부르고스로 이동했다는 뉴스도 순례 도중에 들었다. 나도 택시 타고 점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아내가 동의하지 않아 걷기로 했다. 아내가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체 의견을 받아들일 용의도 있지만 아내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순례길 여정이 암울하기 짝이 없다.
비아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와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중간 소나무 숲길에 기념비가 초라하게 서있다. 이곳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무심코 지나쳐 갔지만 스페인 사람들만 비석을 향해서 십자가를 그리며 기도하고 지나갔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는 비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엊저녁 알베르게에서 동침했던 스페인 부부에게 기념비(Monumento a los Caidos)에 쓰인 내용을 물었더니 약간 멋쩍어하더니 곧장 설명해 주었다. 프랑코 정권이 1936년 ~1939까지 이어진 내전기간 중에 학살의 현장을 기념하는 비석이란다. 그들로서는 감추고 싶은 사연을 내가 물은 거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쑥스러우면 비석을 만들지 말아야지. 비석으로 불쾌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아닐까?
(좌) Monumento a los Caidos (우) 오카카의 성모 소성당
순례길에서 만나게 되는 해충은 파리와 모기 그리고 베드 버그라고 할 수 있다. 여름날엔 모기와 파리가 극성을 떠는데 피할 도리가 없으므로 방충제로 어느 정도는 구제할 수 있지만, ‘베드버그’는 곤란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
한방에 여덟 명이 자는 2층 침대가 네 개 있는 알베르게를 체크인할 수 있어서 웬 떡이냐 싶었다. 5시에 점심 겸 저녁식사를 하러 알베르게에 붙어 있는 햄버거 가게로 갔다. 인터넷 평판에 따라 별점이 높은 햄버거와 맥주 500cc 한 잔과 공짜로 제공되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즐거워하다가 나쁜 뉴스를 듣게 되었다.
우리가 체크인 한 알베르게에서 베드 버그(Bed Bug, 빈대)가 발견되어 한국인 순례자들의 환불소동을 벌였다는 뉴스였다. 우리에게 공립 알베르게 침대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경사를 ‘신의 가호’라고 착각했는데 신의 가호를 기대하기에는 신앙심이 부족한 모양이다. 불안감이 온몸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음의 짐을 한시바삐 털어버리고 싶었다. 중세 마을, 낡은 성당, 낡은 알베르게에서 빈대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거늘. 누가 베드 버거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늦은 시간이라서 다른 숙소를 찾아 5km를 더 걸을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투숙한 알베르게의 룸메이트는 헝가리에서 온 두 아가씨, 프랑스 중년 두 남자, 스페인 60대 장년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를 합해서 8명이 같은 방에서 동침을 하였다. 창문에 방충망이 설치되어 있는데 버그가 어디로 기어들어온 단 말인가?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경험담을 엮은 책에도 예외 없이 언급되었던 베드 버그가 현실에서 나타나 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빈대가 한국에서 8천 km를 달려온 내 몸속에서 유유히 흐르는 피를 빨아먹는 만행을 저지른다면 빈대의 몸통을 눌러 뻥과자로 만들어 버려도 시원치 않을 일이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온몸이 괜히 가렵기 시작한다. 영혼과 육체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고달프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취침 시간(오후 10시)이 안 되어 형광등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8명 모두 누워서 빈대의 공습을 걱정하는 역력한 표정으로 잠자리에 눕는다. 빈대를 본적이 언제더라! 초등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 한두 번 본 것이 전부였다. 그걸 구충한다고 DDT를 잔뜩 뿌린 것 같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60년 이상을 빈대를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이는 많이 보았고, 지금도 그 생김새를 얼추 기억하고 있다. 요즘에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노년들은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 어머니는 형제들의 속옷을 벗겨 숨어 있는 이의 알, 서캐를 호롱불에 튀겨 잡았던 기억, 초등학교 교실에서 앞자리 않은 친구의 등에 기어 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빈대의 모습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내 기억에 들어앉아 있는 빈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그때 천정에서 검은 깨알만 한 작고 검은 벌레 한 마리가 내 침낭 위로 낙하한 모습을 내 눈으로 포착하였다.
베드버그다! 내가 갑자기 외마디를 지른 탓에 각국에서 파견된 룸메이트들이 일제히 내 침대로 몰려왔다. 까만 벌레를 두고 빈대다! 아니다!로 각자 자기 나라 말로 설왕설래를 했지만 그중에는 해충을 연구한 인재는 없어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처럼 답답하다. 단지 고개나 손바닥을 흔드는 것으로 가부를 결정했다.
결론은 빈대로 간주하고 알베르게 매니저에게 항의하러 갔다. 재빠르게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다음 빈대로 추정되는 곤충을 살해하여 그 주검을 들고 알베르게 매니저를 찾아서 사진과 실물을 보여주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룸메이트들은 빈대라고 우기고, 매니저는 빈대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매니저는 인터넷에서 빈대 사진을 찾아서 확대와 축소를 번갈아 해 보고 내 휴대폰에 증거로 채택된 곤충의 사진도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였다. 매니저는 내 사진 속의 곤충은 빈대가 아니라고 누명을 벗겨주려고 노력했지만, 우리 룸메이트들은 빈대라고 박박 우기며 따졌지만 매니저는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순간 나를 지지한 8명의 룸메이트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패잔병처럼 침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배낭은 순례자가 꼭 메고 가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건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한다. 캐리어나 카트를 끌고 가는 사람,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으며, 자전거에 싣고 가는 사람도 있다. 택시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배낭을 배달시키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용을 들더라도 동키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극기 훈련에 참가한 사람도 아닌데 굳이 배낭을 메고 가면서 자기 몸을 혹사시키는 것은 소중한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순례자가 배낭의 무게 때문에 몸이 짓눌려 정신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현상이 초래되기도 한다. 배낭의 짐을 벗어버리면 대신에 그 자리에 ‘자유’와 '편안'이 들어앉게 된다. 자유를 누리면 행복이 날갯짓을 한다. 동키서비스를 이용하는 내 입장에서 순례길에서 배낭을 메고 걷는 사람을 보면 이솝의 우화 ‘당나귀를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무거운 짐을 메고 아들은 당나귀를 몰고 시장으로 가는 장면과 흡사학기 때문이다.
순례길 선험자들의 리스트를 참고해서 배낭을 꾸리다 보면 15kg에 육박했다. 나이 많은 우리는 배낭을 배달해 주는 시스템을 직접 이해하고자 출발지 생장 피드포트에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하코 트란스’라는 배달 전문업체에 들려서 정보를 얻은 바 있다.
우리나라 순례자들은 이를 ‘동키서비스’라고 부르지만 현지인들은 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홍보용 선전지를 보면 서비스의 실체를 거의 파악할 수 있다. 동키서비스는 순례길에서 매일 순례자의 배낭을 다음 목적지 숙소까지 배달해 주는 유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순례자가 고통을 덜기 위해서 짐을 배달시키는 것은 순례가 고행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을 도모하자는 순례의 본질에 어긋난다며 모름지기 순례자는 자기 짐을 스스로 지고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런 논리라면 지팡이도 사용하지 말아야 하냐고 물으면 논리의 비약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같이 나이 많은 시니어들에게는 동키서비스는 정말 필요하고도 편리해서 노벨평화상이라도 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이 그 지역의 셰르파에게 짐을 배달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순례자들은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나의 진정한 충고에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순례자 각자 15kg 가까이 되는 배낭을 도착지 숙소까지 옮겨주고, 거리 병산제에 따라 5€∼8€를 받는다. 순례자의 60% 이상이 동키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로 죄책감을 털어 버기를 권한다.
숙소인 알베르게 등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수수료를 넣는 봉투를 보면 배달 규칙, 수수료, 배달의뢰 방법에 대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배낭배달을 의뢰하는 봉투에 여행자의 이름과 배달할 숙소의 주소를 기재하고 수수료를 넣어 숙소가 정한 장소에 배낭을 내다 놓으면 배달 회사가 배낭을 그날의 목적지까지 옮겨준다. 문제는 공립 알베르게는 예약이 불가능하여 14시 이후에 체크인할 수 있기 때문에 배달할 숙소 주소를 미리 정할 수는 없으므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짐을 배달해야 한다.
예약을 하지 않고 배낭을 배달시켰는데 공립 알베르게에 침대가 없을 경우에는 배달된 배낭은 주인이 도착할 때까지 주인 없는 배낭으로 홀대를 받게 된다. 예약이 안 된 공공 알베르게 주소를 쓰고 배달을 의뢰했다가는 배달사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공립 알베르게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전에 숙소 확보가 관건이 되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배낭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목적지 알베르게에 최대한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곱빼기로 쌓이게 된다. 그런 것이 걱정된다면 우체국에 배낭배달을 의뢰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사실을 알우두기 바란다.
따라서 가능하면 예약이 되는 사립 알베르게에 예약을 하고, 예약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보다 등급이 높은 호스텔이나 펜션, 호텔이나 아파트를 숙소로 예약하여 짐배달을 위탁하는 것이 안전하다. 예약을 하지 않은 곳으로 배낭을 배달시켰다가 배낭을 잃어버리는 참사가 생긴다면 그건 확률이 높지 않은 사건이 자기에게만 일어난 것이므로 운명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질문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인간에게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차동엽 신부는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라고 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신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자유의지라고 한다. 인간의 고통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 고통은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사용했을 때 찾아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의 궤도에서 이탈했을 때 고통이나 불행이나 죽음으로 경고하면서 정상궤도로 돌아가라는 신의 신호를 보낸다(질문 5에 대한 대답)(차동엽: 57-70).
이에 김안제 교수는 신이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스스로 살아가도록 하였다고 해석한다. 그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신이 일부러 주지는 않은 것이며 자연스러운 변화와 진화의 섭리라고 본다. 신이 사랑하는 인간에게 생로병사의 과정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진보와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김안제: 753).
한편 이어령 교수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신이 준 게 아니라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범하여서 인간이 스스로 받은 벌이라고 본다.
--뱀이 뭐라고 했나요? 너도 저 선악과를 따 먹으면 신처럼 눈이 밝아지고 지혜로워진다고 했습니다. 뱀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선악과는 지식의 나무, 신만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선악의 판단을 얻게 되는 나무입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건 인간이 피조물이면서 조물주가 되려고 한 거예요. 이를테면 아들이 아버지가 되려고 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아버지가 나를 낳아줬는데 내가 아버지가 된다고요? 그건 패륜이지요.--(이어령: 28-31).
신은 인간에게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왜 주었을까?
첫째,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자기들의 자유 의지와 도덕적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는 신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고 가르친다. 자유 의지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로써 사랑과 선행도 가능해지지만, 반대로 고통과 불행도 발생할 수 있다. 자유 의지를 통해 인간은 올바른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고난을 극복하며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는 인간의 삶에 도덕적 가치와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한 신의 의지라고도 봐야 한다.
둘째, 고통과 불행은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과정이다. 고통과 어려움은 인간의 내적 성장을 돕는 과정이다. 종교에서는 고통을 통해 인간이 삶의 의미를 더 깊이 탐구하고,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를 찾도록 인도받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셋째. 인간의 고통과 죽음은 신의 의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고통과 죽음이 보다 높은 차원의 신의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은 자신의 한정된 이해로는 신의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우며, 인간의 고통은 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미지의 과정으로 본다. 예를 들어, 고난이 있어야만 기쁨을 이해할 수 있듯이, 고통과 불행도 인간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신께 감사를 느끼도록 하는 방식이다.
넷째, 죽음은 영원한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불행마저도 흔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은 많은 종교에서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한다. 죽음은 영혼이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관문이거나 신과 더 가까이 가는 기회이다.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죽음의 근본적 원인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죄(선악과를 따먹은 원죄) 때문이다(로마서 5장 12절). 물론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못 행사하여(자범죄) 그 결과로 고통과 불행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오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다(요한복음 9장 1절-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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