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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그 조차도 설명하기 어려운

by 리즈

2024, 12월 27일.

25년도 얼마 남지 않는 시점에 난 너무 화가 나서 남편한테 전화해서 욕을 했다. 사실 어디 말할 곳도 없고, 화풀이할 때가 없어서 그냥 내 얘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21년 박사를 졸업하고, 서울권 4년제 대학 연구 교수로 재직하다 23년 지방의 모 대학교 조교수로 일하고 있는 나는 2024년이 그냥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가을 학기는 학교 행사가 많아서 행사 책임자로서 행정 일에 치여서 정말 정신없었고, 그 일을 다 끝낼 무렵 정신을 차리고 보니 중간중간 지도 교수님의 연구실 학생들의 지도도 맡고 있었다. 논문의 주저자로 내 논문을 쓸 시간도 없는데 연구실 뒷일은 내가 다 도맡고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나에게 논문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했지만, 나에게 그들은 한 둘이 아니다 보니 어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내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자기네들 지도교수님에게 요청하고 논문 피드백을 받아야지, 내가 왜 그것까지 해야 하는지 화가 났다.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그게 번 아웃이라고.

이성적으로 그들 또한 내 후배니, 내가 친절하게 논문 지도를 해야 하는 게 맞지만, 감정적으로 나 자신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그들의 부탁도 내게는 부담이 되었다.


사실 나는 국내 박사 출신이지만 지난날 상위 SSCI에 투고한 내 논문은 수는 연구자들의 측면에서 보면 그 업적은 정말 대단해서 많은 분이 칭찬해 주신다. 그런 자신감으로 최근에 모 국립대에 지원했는데, 결과는 서류 전형 탈락이었다. 나는 현직에 있고 내정자도 없다고 해서 오래간만에 해볼 만하다고 자신 있게 지원했지만, 그 결과가 주는 상실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느낌은 아주 어릴 적 내가 이유 없이 남자친구한테 시련당하고 한참 아팠던 것처럼, 그래서 매달리지도 못하고 그냥 받아들여야 했던 것처럼, 하지만 가슴을 후벼 판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 기분은 당분간은 지속할 것이다. 결론은 나는 열심히 살아도 인생은 그 자리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사회는 시끄럽고, 미래는 안 보이고, 계속해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렇게 나처럼 살아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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