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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그녀를 보내줄 준비

by 리즈

일주일 전에도 너무나 멀쩡했던 내 학생은 지금 모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늦은 밤 10시, 자려고 누웠다가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고 보호자가 없는 관계로 중환자실에서는 교수인 나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와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옷만 주섬주섬 입은 채 급하게 부랴부랴 밤 10시 30분 KTX를 타고 강릉 모 병원으로 향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병원 중환자실에 있는 그 아이를 만났지만 내가 알던 로지나라는 아이는 아픔을 가눌 겨를도 없이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내 눈물도 그 자리에서는 사치라고 생각될 만큼 마음이 미어졌고, 의식을 잃은 그 아이가 정신이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미친 듯이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앞자리에서 늘 조용히 수업을 듣던 그 아이… 착한 얼굴이 눈에 선해 세상이 더 원망스러웠다. 꼭 이렇게 까지 고통스럽게 두셔야만 하셨을까. 중환자실 담당의사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여 로지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으나 모든 것이 역부족이라고 했다.


네팔에서 공부도 하고 돈도 벌기 위해 한국이라는 낯선 곳에 희망을 갖고 온 로지나를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의사에게 마지막까지 애써 달라고 부탁드렸다. 제발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여권도 비자도 없어 죽어 가는 딸을 보러 오지 못하는 부모 그리고 두바이에서 일하고 있는 동생도 비자가 없어 누나를 보러 오지도 못하는 이 상황.


교수에게 도와달라고 문자 보낸 우리 학생들의 문자를 보며 더 가슴이 미어졌다.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가 더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늘 나에게 낮은 곳에서 세상을 보게 하신다. 그래서 세상은 늘 혹독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 안에서 사랑을 베풀게 하고자 하심일까. 어젯밤 학생이 보낸 한 문자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God bless you professor, you and prof. Gerald has always gave me hope , specially students like us in a foreign country who doesn’t have anyone to take care of them , may god rewards you better”

내가 학생에게 주었던 “HOPE”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로지나에게 어떠한 희망을 줬던 것일까.


밤을 새우고 서울로 돌아왔고 세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강릉으로 향한다. 그 아이가 죽음 앞에서 더 고통스럽지 않도록 기도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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