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3월 23일
엄마는 큰 결심을 했다. 몇 년을 고민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본인이 몇십 년 동안 당해던 일을 경찰에 신고했다. 마침내 검찰에 기소가 되었고 그 죄명은 다음과 같았다.
1. 성폭력 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주거 칩입, 준 유사 강간) 2. 성폭력 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주거 칩입 강간 등 ) 3. 성폭력 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주거 칩입 준 강간) 4. 강요
피해자의 딸로 숨죽여 엄마를 도와야 했다. 사실 피해자도 힘들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신고한 엄마를 전적으로 도와야 하는 자식들에게도 그 시간은 쉽지 않았다.
2025년 2월 20일
1심 판결 결과는 한 개의 사건을 제외하고 모두 다 피고인에 대한 무죄였다. 믿을 수가 없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피고인을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는 몇 번이고 써냈던 탄원서는 모두 물거품이었고 용기를 내 신고한 피해자의 인권마저 사라져 버렸다. 한 간 소문에는 피고인이 고용한 대형 로펌의 힘이라고 했다.
무엇이 논리고 전략이고 모른 채 큰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엄마에 대한 원망도 있었고, 제대로 반박하지 못한 채 1심 선고를 기다린 검사와 변호사에 대한 신뢰도 사라졌다. 판결결과는 인정해야 했기에 그저 숨죽여 며칠간의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검찰의 항소로 2025년 4월 30일 2심 1차 기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던 중 김재련 변호사 “완벽한 피해자”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첩첩산중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엄마에게 엄마보다 더 고통스러운사람도 있다며 읽어 보라고 건넨 책이다. 그러던 중 우리는 못할게 뭐가 있냐며 김재련 변호사의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컨택했고 직접 만났다. 그렇게 우리는 인연이 되어 엄마의 2심을 함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김재련 변호사님을 만나기 전, 나는 세상에 혼자 오롯이 버려진 것 같았다. 엄마도 엄마였지만 피해자인 엄마를 지켜내야 한다는 딸의 무게가 너무나 버거웠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더한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눌러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박완서 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수필을 읽으며 하루를 버텨냈다. 어쩌면 그 책 제목처럼 하느님을 원망했는지도 모른다.
학교일은 산더미라 체력은 소진될 대로 소진되었고, 바쁜 엄마로 인해 어린이집에서 늘 8시까지 있어야 하는 딸에게 대한 미안함. 그리고 새로운 임용에 있어서 정말 내가 안 되는 이유에 대한 명백한 변명, 그리고 엄마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내가 써 내려가는 판결문에 대한 반박들이 내 삶에 더한 고통으로 다가와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고 난 불면증에 몇 날 며칠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왔고 한숨도 안 자고도 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보면 그다음 날은 겨우 자고, 또 다음날은 또 잠을 거르고… 잠을 못을 못 잘 이유도 딱히 없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채 내 속에 응어리처럼 박혀 있던 것들이 편히 잠들어도 이상할 만큼 잠이 오지 않는 내 상태에 대해서 나는 나의 불면증을 합리화했다.
그러다 만난 김재련 변호사님…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에서 엄마의 변호를 의뢰했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녀에게서 나는 안도의 숨을 쉬고 있다. 적어도 나의 기도가 하늘에 이르러 엄마의 한을 풀어줄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나도 내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우리 가족은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변호사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한 편의 영화 같은 엄마의 삶이 응어리가 풀려 억울함이 덜 할 수 있도록 … 적어도 그것이 2심의 판결문에 담기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