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사는 게 많다.
1. 2025년 8월 박사학위까지 학자금 지급을
완납했다. 기특하다고 대견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문자 하나로 나 자신을 독려하며 바쁘게 지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고객님께 축하와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고객님께서는 25.08.25 기준으로 보유하신 2019-2학기 (일반상환학자금_등록금) 대출을 완제하셨습니다. 그동안 성실하게 상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후배들을 위하여 재단은 최선을 다해 재원을 잘 관리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고객님의 어제보다 밝은 오늘처럼, 오늘보다 더욱 빛날 내일을 기원합니다. “
2. 노비따스 대안학교 진로교사 봉사자로 일하며 천주교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평생 봉사하며 사신 분들도 받기 힘든 상인데 감사하게도 부족한 나에게 상을 주셨다. 돌아가신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도 그 자리에 함께 계시며 기쁜 일을 함께 축하해 주셨다.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분을 기리고 헤아리며 오래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3. 결혼 첫해 원룸에서 시작해서 운 좋게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4년간 정들었던 집을 팔고 25년 7월 10일, 다시 새로운 집을 샀다. 이것이야말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편으로는 순탄하게 집을 샀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잘했다고 하니 이것 또한 매우 기쁘고 감사할 일이었다. 축하 기념으로 소소하게 치맥이라도 해야 했는데 그것 또한 그럴 여유조차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마지막 잔금 치르는 7월 10일 계약일에는 심지어 일본 출장으로 인해 가보지도 못했다.
4. 비록 실패로 끝난 세 번째 시험관이지만, 토닥토닥 고생했다고 나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루에 잠도 넉넉히 못 자며 강원도를 출퇴근하고, 늘 바쁘게 일에 치이며 사는 가운데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을 노력하는 나에게 잘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언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어둠의 동굴을 지나고 있는 나에게 한 줄기 빛은 꼭 와줄 거라 믿는다.
5. 남편을 잃고 삼 남매를 키운 엄마는 예순이 다 된 나이에 조그마한 시골 동네의 권력자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끙끙 앓고 말도 못 하다 겨우 용기 내 신고했는데 증거가 없고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선고 당일, 세상이 너무 억울했지만 다시 바로 잡을 거라고 그 딸은 안동 MBC에 인터뷰를 했다. 적어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기도의 답을 주실 거라 그렇게 나는 간절히 기도했고 바랐다. 사실은 나는 더 이상 에너지가 없었다. 바쁜 내 삶에 엄마 사건에 몰두하다 보니 이제는 모든 것이 고갈되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그 간절한 기도의 답인지… 김재련 변호사님을 만났다. 우리 가족에게 그녀는 한줄기 빛이었다. 변호사 비용도 없어 여기저기 돈을 메꾸기 위해 허동되었지만 그 돈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무엇보다 엄마의 인생을 진정성 있게 바라보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주는 사람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그 결과, 엄마에게 나쁜 짓을 한 피고인은 25년 9월 17일 뇌물죄로 6개월을 판결받고 그 자리에서 구속되었다.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고 나서 그 나쁜 인간은 경찰을 매수하였고 증거를 인멸하였다. 어쩌면 경찰 수사과정에서 엄마는 모진 수모를 당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다. 덕분인지 엄마사건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돈을 바라 신고한 나쁜 사람으로 인식될 뻔했는데 그 인간이 유죄를 선고받았다니 너무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10월 15일 선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엄마의 항소심 사건에 김재련 변호사님을 컨택한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나는 요즘,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지, 잘 살고 있는 것인 지고 모를 만큼 삶의 여유가 없다. 그러다 갑자기 비행기 표를 끊어 딸을 데리고 남편이 출장 가있는 네덜란드로 왔다. 비행기 표도 아끼겠다고 5살 딸을 데리고 핀란드를 경유해 온 내가 너무 웃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잘 온 것 같다.
바쁜 남편은 남편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는 5살 딸과 알콩달콩 헤이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내가 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포기하지 않고 시험관을 견뎌내며 우리 딸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