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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수 Jan 02. 2023

국립혈액원

" 검사는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

한바탕 태풍이 세차게  지나간 듯 난리가 났다. 2003년  당시 수혈에 의한  에이즈 감염으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여파로 혈액원장들이 줄줄이 사법처리와 함께 전문위원이 되었다.


#한계

혈액검사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당시  혈액검사로는 1개월 이내  부적절한 관계에 의한 에이즈 감염자 혈액을  걸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핵산증폭 검사를 도입한다.  이것도  완전한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2주 이내로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장비 구입 등에  수백억 원의 비용을 감수하는 게 맞느냐?"

"그러면  기존 방식을  유지해서 만약 당신이나 가족이  감염된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참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잘 한 결정이었던 같다. 이후 혈액사업은  선진국에  못지않은 검사와 관리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일

이 과정에서  내가 근무한 혈액원에서  한 고등학생이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되어 배상을 청구한 소송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어쩌면  좋은가? 앞길이  구만리인데... 통곡할 일이다."

매정하게도 소송은 기각된다.  재판부는 당시 검사방법으로는 불가항력이라고 판시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저 불운으로  받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설상상 소송 제기로 적십자사가 지급하는 보상금도 지급받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어디에  호소할 것인가?"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20여 년이  지났건만  국가배문제는 크게  진전이  없는  것  같다.  국가(혈액원)가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천재지변을 당한 이재민처럼  배상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 국립혈액원 

적십자는 정부지원으로  핵산증폭 검사를 위한 NAT센터를  구축하는 등 혈액사업 개선에  매진했다. 그러나  혈액사고 사고 여파는 컸다. 

2006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립혈액원을 검토하게 된다.


 1958년 적십자사는 정부로부터 국립혈액원을 인수하여 혈액사업을  시작했다. 4.19 혁명 피해자를 위한  적십자의 헌혈이 최초로 실시되고   생명을 살리는 헌혈은 전쟁터에서 적군. 아군  구분 없이 부상자를 구호하는  인도주의 이념을 보급하는 적십자의 대표적인  활동이  되었다.


적십자는 우리 사회 매혈 문화를 없애고  봉사활동으로 혈액사업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앞서  거론했듯이 2003년 에이즈 수혈 감염으로 국민들에게 호되게  비판을 받으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적십자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하고  물으면 "헌혈"로  대다수 국민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립혈액원이라니?

정부 대신  비판을 감수한  면도 적지 않은데  불명예스럽게  퇴출당하듯이  정부로 이관당하는 것은 억울하기도 했다.


#정은경을 만나다

이와 같은 소용돌이 속에  필자는 혈액관리본부 기획조정팀장을 맡는다. 평촌 보건복지부 청사를  거의 매주 다녔다.


적십자가 혈액사업을 수행하면서 시행착오나 과오가 있었겠지만  적십자 내부에서는

'이런 오명 속에서  물러나야 하는가?'와  

'보다  발전적인 입장으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이 상존했다.


평촌 가는 지하철  차창 밖이 뿌옇게 보인다. 한강피어오르는 보일 듯 말듯한  안갯속에  갇힌 것 같았다.

이때  '코로나' 영웅 정은경(전 질병관리청장)을 만났다.  과장님은 똑 부러지면서도  따뜻한 면을 가지신 분으로  나는  "나중에 과장님은  크게 되실 거야!"라며  장담하곤 했다.  만날 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해주셨고 합리적인 사고로 논의에  임했다.  


이런 분위기가  "어떻게  하면  안전한 혈액을 국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는  적십자와 복지부의  대 명제를  발전적으로 풀어가는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다.


원가에 의한  혈 액수가 도입, NAT센터  건립, BIMS고도화 등 혈액안전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하게 된다.   이런 결과 덕분인지 2007년 어느 순간  국립혈액원   전환계획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후 저출산 고령화라는  추세에도 적십자는 혈액사고의 오명을 벗고  헌혈의 집 확대를 통해 3백만 헌혈자 시대를 연다.  


#'코로나'라는 큰 파도를  넘다

하지만  2020년부터 3년 동안 코로나로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20~30만 명의 헌혈자가  줄어드는 큰 파도였지만  대과 없이  넘겼다.  이 과정에서  정부(중대본)의 역할은  컸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헌혈독려와 대국민 재난안전문자를 보내는 것은  정부만이 할 수 있는 권한으로 크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위기 시 국가기관이  아닌  적십자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부가 다시 국립혈액원  카드를 꺼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코로나 시기에  혈액수급 위기 극복을 위한 적십자의 역할 수행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운영주체보다는  국가적 지원이 더 중요하다.  여전히 저출산으로 피는 부족하기에 앞으로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지원은 더 필요할 것이다.


# 시설 노후는 아직도 진행 중

얼마 전  대구경북혈액원 혈액보관시설에 화재가 발생하여  혈액이  전량 폐기었다. 30년이 넘는 노후된 시설이었다.  화재 복구 동안  만든 임시 보관시설과 자재값 상승 때문에  그나마 신축 계획은 연기되었다.


전국의  몇몇 혈액원은 30~40년이 된 노후화된 시설이다. 이유의  하나혈액원 시설개선을 위한 예산이 막대하고 환자가 부담하는 혈액수가에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예산을 직접 지원하지 않은 한 시설개선은 요원할 수 있다.


2003년 혈액사고 당시 핵산증폭 검사장비를 좀 더 빨리  도입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노후된 시설 개선을 위해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과거의 아쉬움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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