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손님이 찾아왔고, 그래서인지 침침하게 가라앉는 분위기.
모르겠다. 그냥 그런 게 있어.
저녁밥을 먹기 전에, 항상 그랬듯이 컵에 물을 따르고 있었다.
손에 뭔가 차가운 것이 닿아서 보니 컵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휴대폰도 식탁도 모든 것이 물에 젖어 버리고 말았다.
무엇을 하고 있냐며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귀가 먹먹해져서 들리지 않았다.
젖은 식탁도 거실도 부엌도 전부 물에 잠겨버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쏟은 물에, 전부 다 잠겨 버렸다.
시선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요 며칠 사이 내가 사는 곳은 말이 없어졌다.
웃음도 사라졌다.
그냥, 말로는 서로서로 다독이고 애써 괜찮을 거라 하는데,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다 거짓말쟁이.
뻔히 보이는 걸 믿을 거라 생각하는 우리는 모두 거짓말쟁이.
세상이 흑백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처음부터 흑백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난로를 틀어도 되냐고 묻고, 조용히 따뜻한 곳에 앉아 있었다.
그래도 등은 시리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나도 무슨 일인지 몰라서 답해줄 수가 없어.
우리는 모두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해.
가끔 별 이유 없는 그런 것들 있잖아.
뭔지도 모르겠는데 계속 두드리는 것들.
그런 거야.
미안해.
미안해.
그러니까 묻지 말아 주라.
그냥 돌아가 줘.
나는 그냥 여기에 누워서,
계속 비눗방울을 불어 보낼래.
하늘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