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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잠

by 이지원

오후에는 몸을 깨끗이 씻었고 그 덕분에 잠이 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우유, 차, 소곤거리는 어떤 이의 말소리.

잠을 부르는 방법은 참 많지만, 나에게는 따뜻한 물을 끼얹어 몸을 씻어내는 것이 가장 알맞다.


포근한 향기가 나는 잠옷을 입고, 젖은 머리를 꼼꼼하게 말리고 나면 잠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낮동안 쉬지 않고 수다를 떨던 '생각'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가 왔다.

가지 않겠다며 어린아이처럼 옷자락을 붙잡은 채로 버티지만, 사람은 쉬어야 하니까.

새빨개진 눈가를 닦아주고 등을 토닥이며 가는 길을 배웅해 주었다.


소동이 걷히고 나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한 달 만에 보는 얼굴. 제때 찾아온 손님.


그는 "올 때마다 매번 문이 잠겨 있어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어요." 하며, 푹신한 소파에 앉은 채로 쌉싸름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숙제를 밀렸던 어린아이처럼 그 자리에 선 채로 두 손을 배배 꼬고 있었다.

그는 무사히 만나서 다행이라며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마음 안의 빛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때, 우리는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들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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