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꿈을 꾸었다.
내가 완전히 눈꺼풀을 열고 알던 세상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전 열한 시 즈음이었다.
잘게 부서진 잠을 잤다. 해가 아직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다섯 시경에 눈을 한 번 떴다. 꿈에서 탄 택시에서 쫓겨난 직후였을 것이다. 다만 어째서 쫓겨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검푸른 밤을 달리던 그 까만 택시가, 네 개의 바퀴가 어디로 나를 끌고 가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택시기사는 아마 내가 탄 것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말도 없이, 검기만 한 차의 내부에서 이따금씩 바깥의 가로등빛을 알알이 삼키던 핸들을 움직일 뿐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나는 그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군데군데 빗방울의 흔적이 있는 차창으로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상점간판의 빛이 들어왔다.
이제 그 빛이 눈에서 멀어졌을 때, 택시기사는 돌연 숨을 들이켰다. 헉, 하는 새된 숨소리는 묵직한 침묵으로 가득 찼던 차의 내부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백미러에 두 개의 눈이 비쳤다. 오랜 운전으로 피로에 찌든 듯한, 붉은 금이 그어진 두 눈이 일순 둥그렇게 열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마도 어딘가에 차를 세운 모양이었다. 차창을 통해 비치는 것이라곤 먹물 같이 새까만 어둠밖에는 없었다. 그 뒷좌석, 차가운 한기가 온몸으로 퍼지던 뒷좌석에서 나는 가만히 무릎에 손을 올려둔 채로 앉아 있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슬픔도, 불안도, 괴로움도, 두려움도, 그 어떤 것도.
그는 곧장 밖으로 튀어나간 뒤에 쾅, 하고 신경질적으로 차의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내가 있는 뒷좌석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뭉그러진 그 발소리를,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귓속에 흘려 넣었다.
"내려!"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로 그는 외쳤다.
어둠 속에서, 우악스러운 손길이 뻗어 나왔다.
온기라곤 찾아볼 없는 투박한 손이 옷깃을 잡았다. 목이 늘어날 정도로 잡아당겨져 목덜미가 저릿했다. 나는 저항 없이 그의 힘에 딸려갔다. 그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왜 내려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곳은 어디인지.
건너편으로 고꾸라질 만큼 강한 힘으로 나를 끌어낸 그 남자는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탁탁 털었다. 성난 발걸음이 조금 이어지자 운전석의 문이 열렸고 또 한 번 둔탁한 소리를 퍼뜨리며 닫혔다. 나는 택시기사를 삼킨 그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심코 위쪽으로 시선을 옮기다, 그 택시의 정수리에 갓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까만 차는 칠흑 같은 어둠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모든 소리가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