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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Sep 15. 2024

어떠한 결심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는 내 곁에.

허구의 세상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이 불안해서 이미 결말이 난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나의 이야기는 내 손으로 만들어나가기엔 너무나도 어려워서, 언제쯤 끝날지 예측조차 되지 않는 불안한 역경이 아프고 아파서.

그런 생각을 짚어가며 살다 보면, 꼭 등 뒤에서는 낯익고 아픈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내 목소리다.
'가엾은 삶이야. 누가 널 사랑할 수 있을까?'
'그만 끝내!'
'여기서 더 살아간들 뭐가 바뀌겠어?'

등에는 쐐기가 박힌다. 아프다. 빼내려 할수록 더 깊이 박힌다. 까무러칠 정도로 괴롭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는 없다.
일그러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내가 등 뒤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탐탁지 않아 하는 눈빛. 어서 떨어지라고 끝으로 끝으로 나를 내모는...

발밑을 잡아주던 땅이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두 팔마저 이제는 공중 속에 걸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제 조금만 더 몸을 숙이면 정말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주변의 소리가 모두 멈추고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울리던 바로 그때...

 아주 조금, 이대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등을 어루만지지 못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내 등을 쓸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박힌 쐐기를 뽑아 먼 곳으로 던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가엾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고,
그만 끝내라는 따가운 외침을 듣지 않을 것이고,
바꿀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삶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게 되겠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가슴에 품으며 살아야겠다.

"그래도 나는 이 손으로 누군가의 등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는 게 참 고마워."

파랗게 질린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이 말만은 해야겠다.

"아직은, 쓸모 있는 사람이란 뜻이잖아!"





-



조금은 눈앞이 밝아진 것 같기도 하다.
결말이 정해진 허구의 이야기도, 그 무엇도 알아낼 수 없는 나의 삶은...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 아닐까.

무겁게 쌓여있던 나에 대한 아픔을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풀어나가다 보면, 찬바람이 멋대로 드나들던 나와의 성긴 사이도 조금은 촘촘하고 부드럽게 메꿀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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