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에 눌렸다.
내가 살면서 가위에 눌린 적은, 딱 두 번. 4년 전 여름과, 어제 새벽.
이전의 경험에 의하면 두려움에 압도되었어야 했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몸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긁는 등의 꺼림칙한 것이 보이거나,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가장 먼저 새겨졌던 것이 그것이었으니까. 무언가가 올라타 있는 것처럼 묵직하게 눌리는 가슴, 긴 손톱을 세워 다리를 긁는 것만 같은 느낌, 여자의 뒷모습, 뻣뻣하게 경직된 채로 움직이지 않는 몸.
그러나 이번에 꾸었던 꿈은, 그리고 그와 연결된 가위는 무언가 달랐다.
어딘가에 누워있었다. 어디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헛간이었을까, 도서관이었을까. 그 중간 어딘가에 놓인 곳.
커다란 무언가가 온몸을 덮고 있었다. 조금 뜨거울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그 몸도 미세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따스한 숨이 얼굴에 닿았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분위기. 몸 옆으로 늘어뜨린 손에 닿은 부드러운 털.
3~4월은 되어야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바람 내음이 있다. 몸을 덮고 있는 그 커다란 생명체에게서 풍겨오는 것과 같았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에 파묻혀 있는 것 같은, 맑은 날 바람을 한 몸에 끌어안고 있는 것만 같은 향기. 가장 좋아하는 향기를 맛본 순간 눈꺼풀을 열었다. 부서지는 빛이 열린 눈으로 날아들었다.
그리운 얼굴을 보았다.
완전히 선명해진 시야 안에는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던 고양이의 얼굴이 있었다. 그렇지만 뭔가, 내가 알던 그 아이라기에는 달랐다. 우리 고양이가 사람 몸을 다 덮을 정도로 크지는 않았는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 아이는 내 몸을 전부 다 덮고 있었다. 본래 짧고 빽빽했던, 갈색 바탕에 잿빛 얼룩이 어지럽게 자리를 잡은 털도 손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그러나 그 생경한 풍경 속에서도, 녹빛의 눈은 변함이 없었다. 산림을 연상케 하는 두 눈은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재작년에 떠나간 생명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지워질 정도로 힘찬 생명이 거기에 살아있었다.
고양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입꼬리를 살짝 올려, 마치 미소를 짓는 것처럼 아주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병이 악화되어 다리를 절고 복수가 차올라 배가 부풀기 전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손을 들어 쓰다듬지 않았는데도 그르릉 소리를 내었다. 목을 울리는 진동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 맞닿아 있는 곳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외형을 제외한 모든 것이 똑같았다.
나는 말을 걸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을 아무리 달싹여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손이라도 들어 등을 쓰다듬고 싶었지만 여전히 뻣뻣하게 굳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바라보는 것 외에는 어떤 행동도 허락되지 않은 이 공간에서, 나는 그저 온몸으로 맞닿아 있는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말을 걸면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쓰다듬으면 전처럼 손에 머리를 기댈 것만 같은데. 그 어떤 것도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었다. 또렷한 눈에 그 얼굴을 한껏 담는 수밖에. 맞닿은 몸의 온기를 느낄 수밖에.
모든 감정이 유일하게 뜨인 눈을 통해 흘러나왔다. 맑게 방울진 채로 눈을 덮는 감정이, 심장을 끌어안아 죄인 채로 풀어주지 않았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소리도, 시야도 흐려지고, 그저 물기 어린 마음만 남았다.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듯 심장이 힘차게 몸부림칠 때, 유일하게 그 소리만이 선명히 드러날 때,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그 느낌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눈길이 닿는 천장도, 사방을 둘러싼 벽도, 전부 새벽이 품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짙은 보랏빛. 답답하게 가슴을 눌러오는 서늘한 공기. 누군가가 팔과 다리를 잡고 팽팽하게 늘리는 것처럼, 온몸이 단단하게 굳은 채로 긴장되어 있었다. 입을 벌릴 수도 혀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형태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몸 위에 올라타 아주 강한 힘으로 누르고 있었다. 편안하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환각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일은 없었다. 전처럼 손톱을 바짝 세워 날카롭게 다리를 긁지도 않았다. 그 어떤 것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오롯이 그 상황을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 구체적인 형태도 뚜렷한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는 그 순간이 힘겨웠을 뿐이다.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풀어내었던 방법을 떠올리고 어떻게든 손가락으로 모든 힘을 보내려 했다. 허공으로 흩어지고 튀어 다니던 생각을 전부 쓸어 모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실로 단단히 묶인 것처럼, 나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긴장감에 압도되던 나는, 끝내 정신을 놓고 말았다.
또다시 꿈을 꾸었다.
자유 의지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누워 있지 않고 바닥에 발을 디딘 채로 서 있었다. 스크린 속의 배우처럼, 어떠한 흐름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전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방금 전의 그 긴장감이 마음속 중앙을 깊게 가르고 돌아갔기에 나는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꿈의 흐름을 예측할 수가 없어 그저 흐르는 대로 따라갔다.
내 몸을 덮고 지키던 고양이는 이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다만 달라진 점이라면 새까만 옷을 입은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생기가 넘치는 붉은색의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함께 따르는 금색의 방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불안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꿈속의 나는 이제 작별인사를 하는 듯했다. 뭐라고 입을 움직여 말을 하고 바로 등 뒤에 있던 통나무로 이루어진 문을 열었다. 굵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춥지 않았다. 삐죽하게 콧수염을 기르고 검은 중절모를 눌러쓴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뭐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둘을 등진 채로 그곳을 빠져나와, 이제 문을 닫으려 했다.
남자의 옆에 앉아 끝까지 나를 지켜보던 고양이가, 처음으로 입을 움직였다.
침묵만이 가득했던 세상에, 단 한 마디가 머릿속까지 흘러왔다. 걱정과 온기가 서린, 높고 가는 목소리였다.
저 친구, 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을까요?
귀를 울리는 그 목소리에 마음속을 옭아매던 끈이 끊어졌다. 동시에 나의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머무는 것을 멈추고 몸 이곳저곳으로 흘러들었다. 손끝도, 다리도, 모두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단단하게 굳어 있던 흐름의 틀에서 벗어난 나는 이 꿈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양이를 꼭 끌어안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털이,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그 향기가 마음을 아릿하게 건드렸다.
그럼, 너 걱정 안 하게 내가 씩씩하게 살게.
나중에, 나중에 만나면 우리 많이 이야기하자. 저 밖에서 쌓아왔던 것들 내가 다 이야기해 줄게. 걱정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잘 쉬고 있어. 알겠지?
고양이는 처음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가만히 안겨 있을 뿐이었다. 그 정적 속에서 스며드는 온기가, 이미 세상을 떠난 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고 분명했다. 나는 물기가 축축하게 스며들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믿기지가 않아. 네가 정말 떠난 게 맞을까? 정말 죽은 거야?
고양이는 놀란 기색도 없이, 이전과 다름없는 온화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들리지 않던 방울 소리가, 그의 온기처럼 선명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그 직후에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을 덮었던 온기와, 손에 닿았던 부드러운 털의 감촉은 2월의 마지막 하루를 짙게 물들인 채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은, 그가 떠난 지 정확히 2년이 되는 날.
우리 가족은 믿지 않지만, 나는 그 애가 잠시 나를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