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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by 이지원

아직, 아직 살아있어.


온몸의 감각이 무뎌졌다. 허기를 느끼는 법을 잊었고 갈증을 느끼는 법을 잊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건조하게 마른 목이 쩍쩍 달라붙는 것을 느꼈으나 어떠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녹아 사라지길 바랐다.


산의 등 뒤에서 금빛 해가 피어날 때, 나는 말을 잃었다. 새로운 봄꽃을 보고 싶었고 등 뒤로 지는 해를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걸 마지막으로 다 끝나버렸으면 했어. 전부 다. 나도, 너도, 전부 다.


부모의 등에 기댈 수 없고 집에 기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비척거릴 때마다 피와 살이 이어진 네 개의 눈에서는 안쓰러움과 동시에 묘한 만족감이 피어났다. 힘들겠네, 힘들겠네. 그래도 그게 다 피와 살이 돼. 그게 다 뛰어나서 그런 것 아니겠니.


그래도 넌 달라서 다행이야.


잠결에 이를 악물었다.


나는 힘이 들 적마다 자꾸만 부모를 찾았다. 그러나 바라던 대로 부모를 만난다 해도 온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내내 곯던 배를 채우고 좀 더 따뜻한 곳에서 잘 수 있다는 것만은 좋았다. 흉측하게 뭉그러진 정신을 안길 수는 없었지만.


내가 짓눌리면 짓눌릴수록, 모두가 행복해진다.

내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모두가 행복해진다.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에 혼자 있을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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