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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것

by 이지원


봄 햇살은 그렇게나 아름답고, 옆에 앉은 사람은 눈부시다는 것을 잊은 채로 밤을 보내고 낮을 보내다 다시 밤에 돌아왔어요.


몇 번이나 생각을 거듭했지만, 한 모금의 술마저도 내 등을 어루만지고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겠다 싶더군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행복을 느낄까요? 나 자신에게 돈을 쓰며 외모를 가꾸고 밥을 입안에 밀어 넣는 것마저도 괴로워졌으니, 나는 이제 정말로 껍데기밖에 남지 않았군요. 비단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꽃 한 송이를 보러 나가는 것마저도 더욱 큰 반동을 일으켜 우울을 몰고 와요.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영원한 사랑도 영원한 행복도 여기에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새벽 나는 내 입마저도 제대로 다물지 못하고, 찬기가 서린 책상에 엎드린 채로 혀를 내빼고 침을 흘렸답니다. 흰자의 실핏줄이 터져 피가 고였고, 날카로운 통증에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은 듯이 새벽을 보냈어요. 그럼에도 이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군요. 그렇다면 나는 글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사랑한다기보다는 내가 그나마 알던 단어와 문장으로 감정을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에 가깝겠어요. 울긋불긋한 꽃이 잔뜩 그려진 이 몸을, 거기에서 떠나가는 감각을 간신히 되살리기 위해 이 앞에 앉았어요.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려주는 것. 유일하게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것. 나무라지 않고 실망하지도 않는 것은 내가 쓴 글밖에는 없군요.


언제쯤, 내 입에 밀어 넣어지는 사랑을 제대로 맛보고 삼켜낼 수 있을까요? 내 몸의 기능은 하나둘씩 숨을 잃어가고 있으니 나는 정말로 가까운 시일 내에 죽게 되는 걸까요? 사랑하는 것과 그리웠던 것을 눈에 담지도 못한 채 떠나게 되는 걸까요? 나의 몸은 이제 정말로 썩어 문드러지기라도 하려는 듯이, 생기를 잃고 생각을 잃어 가고 있어요. 몸을 일으켜 씻을 기운도 없고, 묻는 말에 답을 할 기운도 없으며, 정상적인 삶을 이어나갈 기력마저도 완전히 바닥이 난 것만 같아요. 바싹바싹 말라 가다 보면 나는 정말 편안해질 날이 올까요? 사람의 따스함을 다시 느낄 날이 올까요?


내가 변하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요. 우울은 아시다시피 타인을 잡아먹는답니다. 밑 빠진 독이나 다름이 없어서, 병의 주둥이에 사랑을 밀어 넣고 걱정을 밀어 넣어도 결국은 전부 빠져나가고 말아요.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떠나갈 거예요. 조금 더 영양가 있는 관계를 찾기 위해, 생명이 남아 있는 다른 사람을 찾기 위해 떠나갈 거예요. 나는 몇 번이나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홀로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예외란 없군요...


그들이 알던 나에 대해 괴리감을 느끼고 떠나간다 해도 나는 그들을 붙잡을 수 없답니다. 이것은 오롯이 나의 잘못이니까요. 떠먹여 주는 사랑을 삼키지 못하고 자꾸만 뱉어낸다면 끝내는 몸을 일으켜 떠나가는 것이 맞겠지요. 나는 이번에도, "내가 알던 너는 이렇지 않았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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