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도 나를 비현실로 이끌어줄 수는 없었다.
친구도, 20년간 믿고 따른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두 발을 떠오르게 하고 눈앞의 세상이 다른 색으로 가득 차게 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은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자랐기에, 그들마저도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에 남을 다른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 눈앞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자꾸만 정신이 다른 곳으로 빗겨 나가기 시작한다. 내가 가진 돈을 지불해서 입속에 새로운 음식을 밀어 넣고, 새로운 바람과 새로운 꽃을 보아도 그뿐이었다. 환상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깨달은 것도 같다.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칠 수 있는 안식처도 없었으며, 등을 쓰다듬는 사람의 손길도 좀처럼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그나마 남은 기력을 눈물로 흘려보내지도 못하게 되었다.
세상이 내게 바라는 에너지는 100%. 모든 방면에서 100%이길 바란다. 처음부터 그것을 전제로 하고 시작한다. 내가 기력이 없어도 나는 타인의 앞에서 언제나 100%인 채로 살아야 해. 그런 것이 사회생활이라고, 부모는 이야기했다. 그래서 부모와 형제의 손찌검은 가끔 내게 향했던 걸까.
어쩌면, 어쩌면 세상의 등을 밟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말이야...
제발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너무나도 사랑을 받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술을 마시고, 빳빳한 담배를 꺼내고, 새빨갛게 열이 오른 얼굴로 거리를 누비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둥실 떠오르고 싶었던 거야.
새벽이 아무것도 없는 땅을 안고 있을 때, 나는 문득 술을 마시고 싶어졌다.
눈앞이 방울진 것들로 물들어서, 전부 다 둥글게 말려서 뭉그러져 보이는 지금이라면, 그 한 캔의 술이 나를 행복한 곳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으면 좋겠어. 그게 있으면 끌어안아주는 손이 없어도,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없어도 나는 왠지 아주 따뜻해지거든.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괜찮다'는 말이, 그제야 흘러나와서 폭죽처럼 터져. 거리의 조명이 아주 풍성해지고, 바닥은 나를 들어 올리고, 나를 누르던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서...
나는 정말로 웃을 수 있게 돼.
세상의 사람들이, 내 머리 위의 하늘이 둥둥 떠올라. 아니, 내가 떠오르는 걸까? 뭐가 되었든, 땅은 참 부드럽고, 하늘은 참 단단하구나. 너의 목소리와 나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있지, 아주 행복해. 그것만 있으면 안 될 것이 없어. 꽃도 하늘도 전부 원 없이 볼 수 있어. 그래 정말 실없이 웃을 수가 있어. 실없이 울어버릴 수가 있어. 누구의 앞에서도 뱉어내지 못하던 것을 그곳에서는 마음껏 뱉어낼 수가 있어.
그토록 이상적인 것이, 여기에 있었구나.
사람의 품을 마음껏 느낄 수 없는 지금은, 그런 것의 힘이라도 조금 빌려야 할 것 같아.
나는 아주 오랫동안, 가늠도 할 수 없는 시간을 외로움으로 칠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그것을 사람이 완전히 채워줄 수 없다는 걸 알아.
나, 이제 가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아.
하늘을 딛고 땅으로 손을 뻗을 시간이 온 것 같아.
저 하늘에 피어난 꽃과 원 없이 피어날 시간이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