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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무

by 이지원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부모의 손만은 빌리고 싶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면 내쫓아 버릴 거야."


술에 취한 아빠는 그런 말을 자주 하셨었다.

밥상 앞에 앉을 적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빠와 나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내쫓으시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술기운이 피부 밑으로 밀려들어와 새빨갛게 달아오른 아빠의 얼굴은 눈길마저도 내려앉기를 거부하는 곳이었다. 머리 위의 조명을 받아 파랗게 빛나는 소주병의 몸뚱이도 그다지 보고 싶지가 않았다. 병원에서 지겹도록 맡았던 소독약의 향기가 식탁 위에 퍼졌다. 술, 술, 술, 저놈의 술 때문이다.


오빠가 군에 입대하고, 그러고 나서도 얼마간 아빠는 술을 드셨다.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꼭 술에 취한 목소리를 한 번씩은 들어야만 했다. 한여름 내내 우는 매미를 대여섯 마리 정도 잡아다 집안에 풀어놓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술에 절은 아빠의 목소리는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목구멍 속에서 돋아나는 거칠거칠한 분노를, 심장을 쥐어짜는 불안을 느끼고 싶지 않아 귀를 틀어막고 무작정 밖으로 튀어나갔다. 짝이 다른 양말을 신은 것도 모른 채로.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으면,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자지러지기 시작한다.


보면 안 돼, 보면 안 돼. 마음 안에서 울려 퍼지는 만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결국 휴대폰을 들어 투박한 메시지 창을 확인하고야 만다.


아버지, 적어도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있어 나는 병자였고, 이 집에서 나가야 하는 사람이었고, 미친 것이었으며, 두 번 다시 그의 집에 들어와서는 안 될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진심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 하셨다.

술에 취하면 머릿속이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니, 본심이 아닌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면서. 그러니 아빠가 내뱉은 말은 애써 기억하지 말고 잊으라고, 눈물에 젖어 뻣뻣해진 나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으며 나를 달래셨다. 엄마, 그게 정말일까.


엄마, 엄마는 엄마를 위로하고 싶은 게 아닐까?


아빠는 사람이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대. 그래서 누군가가 밖에 나가는 것을 아주 두려워한대. 평소에는 어른이니 그것을 참는데, 술이 들어오면 억눌렀던 것들이 전부 튀어나오니 결국 어릴 적의 불안이 다시 나오는 거래.


나는, 그에게 어떠한 연민을 가져야 하는 걸까.

나는, 어쩌면 자꾸만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는 사람일지도 몰라.


지금의 아빠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오랜만에 집에 왔더니 이제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겠다면서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십 년간 번복이 되어왔던 결심이므로 나는 더 이상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잘됐네.'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가족을 지키려 하는 사람이었고, 책임감도 컸으며,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책도 마음껏 사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빠를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조금은 기대려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빠가 술에 취하거나, 그렇지 않았을 때도 가끔씩 "모든 지원을 끊어버리겠다"라고 말을 할 때에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수차례 들어왔었다. 스무 살이 되는 순간부터 짐을 싸서 나가게 하겠다던 아빠의 결심은 결국 지켜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다만 나는 아빠가 그저 자식의 독립을 바라는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그런 말 하나하나를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식과 함께 있는 것을 지겹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멋대로 해석해 버린 탓이다.


나라고 이 집에서 죽도록 박혀 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릴 적부터 독립을 강조하는 아빠의 말을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인지, 나는 그다지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기댈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막힐 만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식의 목소리를 듣는 것마저도 어쩌면 피곤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최대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머리를 기댈 만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파고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의 사고는 이미 한 방향으로 길이 나 버려서, 내가 정말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타인에게 파고드는 순간 민폐가 될 것만 같아 좀처럼 사람을 믿지 못한다. 기생충처럼 남을 갉아먹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그런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기대지 못할 뿐이다.


나는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의 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한 모양이다.

마음이 괴로우면 집부터 떠오르는 사람이니 말이다.


나는 단지, '얼마든지 넘어져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상처를 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돈이 전해주는 사랑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다 큰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나무였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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