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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비

by 이지원

눅눅한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둘째 고양이의 병도 깊어갔다.

마른 몸속을 뒤덮은 종양이 한눈에 보기에도 커져서 배가 곪고 악취가 심해졌다.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도 그때뿐, 다음날 눈을 떠 보면 또다시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꽤 전부터 병원에서는 이제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도 모르는 병이 자꾸만 그 애의 몸을 먹고 자란다. 하루가 무섭게 잡아먹힌다.


이제는 인지 기능도 많이 약해져서 배가 부를 만큼 밥을 먹여도 또다시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챈다. 그러나 아무리 음식이 들어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묽은 변으로 배출해내고야 만다. 자꾸만 살기 위해 먹고, 마시고, 온 힘을 다해 여기에 남아 있으려 하는데 몸이 그 의지를 받아내지 못한다. 오늘 낮에는 바닥을 핥으며 같은 곳을 돌고, 먹을 것이라곤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밥솥의 뚜껑을 핥았다.

아이고, 아프구나, 많이 아프구나. 나는 소용없는 말만 반복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앙상한 뼈가 두드러진 등을 쓸었다. 그 애는 한 번 반응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바닥을 핥았다.


가끔은, 정말 마법이라도 일어난 건가 싶을 정도로 꼭꼭 숨어버리곤 한다. 오늘도 몇 번이나 자취를 감추었다. 베란다도, 현관문도, 단 한 번도 연 적이 없는데 온 집안을 헤집어도 나오지 않았다. 모르는 곳도 없는 집안 곳곳을 들추고, 온 침대와 벽장 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간식이 담긴 통을 잡아채 요란하게 흔들어도 집안은 조용했다. 한참이 흘러 내가 정말 울상이 되고 나서야 그 애는 슬그머니 어딘가에서 나왔다. 그러면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서 말을 더듬다가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여전히 희끄무레한 노묘의 눈동자는 밥그릇 앞으로 향한다.


네가 정말 이별을 준비하는 걸까?


덜컥 겁이 났다. 최근 들어 일어난 모든 일들이 오로지 하나의 결말로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난밤에, 둘이서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내 팔을 베고 누워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 눈빛이 떠올랐다. 바랜 숲 같은 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아, 목덜미가 서늘하게 식었다. 평소와 달리 무언가 요구하는 몸짓도 없었으며, 소리를 내어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저 한참 동안 그 눈에 내 얼굴을, 내 눈동자를 비추어 보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이럴 리가 없는데.


가슴 안쪽에서 요동치는 불안을 더 밑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을 들어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내 눈에 머물러 있던 녹빛의 숲이 그제야 서서히 깜박였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은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재작년 봄 첫째 고양이를 떠나보내기 전에도 계속해서 같은 감각에 시달렸다. 속이 자꾸만 울렁거리고,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 온몸이 차게 식는 느낌이 싫었다. 거짓말, 거짓말. 쓸데없는 생각이야. 그렇게 받아들이고 모르는 척을 했지만 끝내 그는 떠나고 말았다. 그날 밤에는 물이 어려 흐린 보름달이 하나 떠올랐다.


바람이, 달이, 별이 그 애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지난여름 그 애를 꿈에서 만나고 돌아왔는데.


너까지 거기 가면 어떡해.

너까지 내 꿈에 나오면 어떡해.


가지 마, 난 더 기다리기 싫어. 조금만 더, 인사할 틈은 주고 가.

아니, 적어도 혼자 숨어서 떠나지 마.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떠나지 마.

더 늦게, 더 살아줘, 더.


그런 말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어린 욕심을 부린다.

조금만 더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조금만 더.


받아들일 것 같으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생살을 떼어내듯 아프고 시린 것이 또 찾아오겠구나.

조금씩 너를 배웅할 때가 오고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남은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뿐이야.

사랑해, 사랑해.

어리고 작았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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