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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져도 지키고 싶은

by 이지원

평온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삼 개월 전과는 명확히 다른 시간이다. 책을 읽고 싶을 땐 책을 읽고, 질색하던 운동을 시작했으며, 제대로 밥을 먹고 건강을 챙기고 있다.

어느 정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삼 개월 전, 나는 극심한 이명과 호흡곤란에 시달렸다. 물속에 머리를 끝없이 담그고 있는 듯했다.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생기라곤 찾을 수 없는 강의실에 발을 들일 때마다 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이명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마다 잠을 설쳐 붉게 충혈된 눈을 굴리며 나는 사람의 등을 보았다. 하나하나, 그 누구도 빠뜨리지 않고.

강의를 듣다 심장이 으깨질 것처럼 아프면 화장실로 달렸다. 그 순간만큼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서늘한 화장실의 벽을 손으로 더듬더듬 짚고, 그대로 계속해서 숨을 골랐다. 감은 눈 속에서도 여러 사람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는데, 지독한 악몽과도 같았다. 분명 알던 사람의 것인데,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니었다. 이목구비가 뭉그러지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얼굴이 다가왔다.


생시에도 악몽을 꾸자 사람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전부 다 날카로운 칼을 들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상처로 얼룩진 기억에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전부 적으로 돌리고 있었다. 괜찮은지 묻는 말은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으며, 가끔씩 울리는 전화벨은 날벌레의 날갯짓보다도 성가셨고, 무엇보다도 자꾸만 숨이 막혀왔다. 누운 자리에서도 몇 번이나 숨을 헐떡이며 구급차를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 시야가 노란색, 푸른색으로 정신없이 번뜩였다. 깜박깜박 잠이 들다 깨기를 반복했다.


병에 걸린 것 같아.

진득하게 등에 옮겨 붙는 시트를 움켜쥐며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말을 잃었다. 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괜찮아야 한다'는 강박이 극에 달하다 결국 이성이 끊긴 것은 그때쯤이었다. 나는 혼탁한 정신으로 일상을 이어나갔으며, 자꾸만 방 안에서 새로운 것을 보았다. 북실북실하게 털이 자라난 상한 달걀, 가끔씩 옆에 누워있던 마른 몸의 남자, 꿈에서 보던 어린아이.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산 사람들을 막아내며 나는 방 안에서 죽어갔다. 그리고 죽어가는 것을 곧 해방이라 불렀다.


언젠가부터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마저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더워서,라고 스스로에게 둘러대며 나는 살을 보인 채 드러누웠다. 그제야, 그제야 살 것만 같았다. 맨살에 철이 지난 이불이 닿았다. 그 속에서 자지러지는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러 꺼 버렸다. 이제 정말, 천장과 바닥과 침대만이 곁에 남았다.



"와, 전부 반대로 하고 있어."


호흡이 제 리듬을 찾고, 차츰 안정을 찾아갈 때 즈음에야 나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나는 더 이상 사람다운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지 않았고, 내가 유지할 수 있는 사람다움은 전부 부수는 방식으로 나름의 방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숨을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산산조각이 난 정신을 끼워 맞출 시간을 벌고 싶었던 거야. 매일같이 나가던 수업을, 매일같이 만나던 사람을, 그 앞에서 내가 짓던 표정을 전부 게워낼 정도로 나는 괴로웠던 거야. 산 사람들의 눈으로 본 나는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나는 사실 누구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 나를 돌보려 했던 거구나.'


나는 누군가 "지금은 몸이 좀 괜찮니?"라고 물을 적마다 "아직 아파요." 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어색한 웃음으로 긴 말을 대신했다. 마음이 아픈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매일같이, 생시에도 악몽을 꾸고, 그것이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은 그들의 얼굴에 씔 적마다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무구한 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악몽이 겹쳤고, 그래서 이전처럼 떳떳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나 왜 그러한 악몽을 꾸는지, 왜 자꾸만 심장이 으깨질 것처럼 아픈지, 언제쯤 아픈 것이 끝날지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산 사람들이 기대하는 답을 들려주지 못했다. 구구절절 설명을 할 자신도, 그 뒤의 반응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할 기력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방학을 맞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자 나는 긴 잠에 빠졌다. 며칠 동안 긴 잠을 자다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고, 운동을 시작했다. 작은 식물을 기르며 나름의 재미를 찾아보려고 하기도 했다.

새로운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방식에 극명한 차이가 있으나, 삼 개월 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여전히 나를 살리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었음은 변함이 없다.


나는 감각이 망가졌음에도 살아있으려 했다.

과격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나를 살리려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것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아가고 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나를 안는 방법을 연구하고, 기록해보려 한다.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내가 나를 건강하게 도울 수 있도록.


산산이 부서져도 지키고 싶은,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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