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이걸 하세요?"

by 이지원

내 전공은 행정으로, 주변 어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곳이라고들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일단 대학에 가서 생각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이끌려 나는 행정학과에 들어왔다. 행정이 주는 특유의 딱딱한 이미지가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 심술을 부렸지만, 한편으론 약간의 기대를 품기도 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의외로 나랑 잘 맞을 수도 있겠지. 난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잖아.


주어진 과제를 제출하고 사람들 앞에 나가 발표할 일이 꽤 있었는데, 그런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또래와 함께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니 뭐라도 잘해서 눈에 띄어보자는 나름의 작전이기도 했다. 학문 자체는 내 마음을 두드리지 못했지만 성실한 생활로 사람들 틈에 낄 수는 있었다. 오로지 그것만으로 작게나마 위안을 삼고 살았다. 과제를 잘 해왔다거나 수업 태도가 좋다거나 하는 칭찬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던 시기에는 그런 칭찬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고 나니 단순히 성적이 좋은 것만으로는 칭찬을 들을 수 없었다. 항상 그 뒤에 다른 말들이 따라붙었다.

"성적은 좋은데, 대외활동 같은 건 따로 안 하니?"

"이런 프로그램도 있는데, 참여는 안 할 거니?"

"어느 회사로 가고 싶니?"

"뭘 하면서 살고 싶니?"


내 머리 위로 미래를 묻는 수많은 질문들이 끼얹어졌다. 차고 푸른 질문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는 여태껏 '남에게 보이는 나'만 보며 살아왔지,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꾸역꾸역 전공과 관련된 직장을 정해 말도 안 되는 동기를 집어넣으며 억지로 웃던 내가 생각났다. 심지어 그 말도 안 되는 동기마저도 제대로 정리해 말하지 못했다. 무지막지하게 큰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더듬더듬 거짓말을 할 때마다 등골에 따가운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듣고 있을 상대에게, 그 말 뒤에 웅크리고 있을 나에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사과했다.

언제나, 진로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면 뱃속에 가시가 돋았다.



세 번째로 여름방학을 맞으면서,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마음이 활발히 움직일까? 무엇을 해야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든 매번 즐거울 수는 없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으니까. 잘 맞다고 생각해도 어떤 부분에서든 곤란함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한 부분이라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어느 정도는 사랑하며 일하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말이다.

적어도 "왜 이걸 하세요?"라고 묻는 질문에 당당히 대답할 이유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다. 그랬기 때문에, 여태껏 살면서 "넌 이걸 왜 해?"라는 질문에 가장 당당하게 대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너는 왜 그림을 그리는 거야?"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그림을 그리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담백하게 답변했다.

"좋으니까."


정말, 그게 다였다. 오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종이와 펜, 색을 더해줄 물감이나 색연필, 빛과 그림자만이 남았다. 전문적으로 진득하게 그림을 배워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림을 즐겼다. 내 몸에서 내가 빠져나오는 것만 같은, 한계랄 것이 없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좋았다. 그림에는 나의 한 부분을 떼어 담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보이는 것으로 바꿀 수 있었다. 거울도 모두 담지 못하는 진짜 나를 그림에는 전부 담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림이 좋았다.


글 역시 같은 길을 타고 흐른다. 나는 작년 브런치스토리에 발을 들이고,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가며 내가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립할 수 있었다. 글은 곧 문자로 그리는 그림이었다. 내가 아는 단어, 문장, 풍경, 들었던 소리와 느꼈던 것을 모두 담아내어 감정을 그려내었다. 내가 언제,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루 날을 잡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을 때가 많다. 그때의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짚어주기도 하고, 그때의 내가 바랐지만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말들로 대답을 하기도 한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 자신을 그리 자주 되돌아보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나온 날들은 어딘가에 기록해두지 않으면 머나먼 기억 속으로 침잠하기 때문이다.

글은 곧 내가 꺼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조력자이다. 단순히 직업이나 취미로 삼는 것을 넘어 나의 삶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내가 쓰는 글이 당장 나 자신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거나 길잡이가 되어주지는 않아도, 내 글은 날 계속 살아있게 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날 버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