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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버리지 마

by 이지원

"엄마, 나 버리고 갈 거야?"

나는 어릴 때 이런 말을 곧잘 했었다. 엄마는 집안에 소란이 있고 나면 자주 밖으로 나갔는데, 그것이 "나는 이 집에서 나갈 거야."라는 말과 함께할 때도 있었고, 불안한 침묵과 함께할 때도 있었다. 머리가 자란 지금은 그것이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안다.

결국 엄마가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에 그리 느끼는 것이겠지만.


반대로 아빠가 "엄마랑 같이 살 건지, 아빠랑 같이 살 건지 선택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단순히 홧김에 한 말이란 것을 알아도 나는 그날 밤을 두려움으로 채웠다. 빨리 날이 밝아서 모두가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이 밝으면 엄마와 아빠는 거의 화해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색한 사과를 받는다. 긴장을 풀어둘 수 있다.


부모님이 함부로 아이를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그때의 불안은 참 컸다. 엄마가 잠시 장을 보러 나갈 때도 나는 불안에 떨었다. 센서등이 꺼진 현관에는 캄캄한 어둠이 찾아왔고, 내 주변을 둘러싼 가구와 천장과 바닥이 유난히 높고 깊게 느껴졌다. 불규칙하게 떨리는 몸과 세상이 싫었다. 저녁이 다 되도록 집을 밝게 만들지 못하고 한구석에 웅크려 앉아 있기도 했다. 이후에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온 엄마의 겉옷에는 시원하고 청량한 바깥공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수박 냄새와 비슷한, 푸른 냄새. 좋지만 어딘가 낯선 냄새.

그리 불우했던 어린 시절은 아니었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좋지 않은 기억의 향이 더욱 짙어진다. 낮에도 밤이 물러가지 않아서 그렇다. 산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하늘과, 이따금씩 번쩍이는 빛, 하얗게 물드는 눈.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잿빛 구름이 머리 안으로 마구 몰려들어서 그렇다. 가장 듣기 힘들어하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왠지 "날 버리지 마."라고 애걸복걸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가끔 매체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아도 싫었다. 내 머리가 바닥에 처박히는 듯한 느낌. 아이러니하게도 "버리지 마."라는 말을 내뱉을수록 정말 버려진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남이 그리 말하는 것마저도 싫었다.

말하는 사람의 실제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 짧은 말 한마디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시큼한 배냇내를 풍기는 갓난아기, 젓가락질이 아직 서툰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보였다. 요동치는 불안을 자꾸만 누르고 삼켜야만 했던 아이. 모든 것이 지나간 다음에야 뒤늦게 사과를 받았던 아이. 억누르고 삼키는 것이 너무 익숙해, 함께 있어 달라는 표현을 마음껏 하지 못하게 된 어른.


그러나 나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직접 마주 봐야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이었던, 그랬기에 완벽하지 않았던 내 부모님의 흔적을, 나는 꼭 안고 다독여주려 한다.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마음 안에 흘려 넣으려 한다.



비가 아직 오는데,

이런 날에는 꼭 찾아와.

정말 두 눈에 담아낼 수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찾아왔으면 좋겠다.

평생 나랑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은 나니까, 꼭 다독여 주고 안아줘야지.


있잖아, 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중에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넌 버려진 게 아니야.

너에게는 내가 있어.

작고 어린 그 마음을 이제는 안을 수 있어.


나에게는,

이제 널 꼭 안아줄 힘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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