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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길이 아닌, 나의 시간으로

나의 시간과 나만의 리듬을 인정하자.

by 이지원

내가 먼저 나를 응원할 수 있어야 해.


유독 침침해지는 마음을 달래며 운동을 하던 중 떠오른 생각이다. 동시에, 이제껏 나를 불안하게 했던 모든 것들의 핵심을 찾았다. 글과 말로 정리하기도 어려웠던 케케묵은 먼지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이제야 바깥으로 꺼내진 것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나갈 때 극심한 불안을 느꼈다. 내가 그 사람이 이루어놓은 길을 무조건 똑같은 시기에 똑같이 따라 밟아야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누군가가 몇 살 즈음에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고, 몇 살 즈음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몇 살 즈음에 인턴을 시작하는 흐름으로 탄탄하게 살아가는 걸 보았을 때, 무조건 그에 맞추어 나도 똑같은 길을 밟아야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그가 떠나갈 것만 같았다.

즉 내가 호감을 품은 타인이란, 곧 우상이었다. 그가 비슷한 줄의 나이대에 있어도 나는 무조건 나를 아래로 끌어내리고 그를 우상으로 치켜세웠다. 그저 '대단하다.', '부러워.'라는 감정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추앙했다. 마음은 조급했고 불안은 컸다. 그것을 먹고 자란 부담은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찌어찌 시작하더라도 부담감에 짓눌려 배우는 재미를 잃고 말았다.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 나날을 오랫동안 반복하다가, 오늘에서야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뜩였다.


'이 삶에는 내가 없잖아.'


여태껏 정한 목표의 뒷면을 보면, 그 동기가 명확하지 않았다. '해야 하니까.', '저 사람도 하잖아.', '이렇게 안 하면 아무도 날 안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빈약한 동기가 전부였다. 나는 그 활동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거나 돌보려 하지 않았다. 그 활동으로 장래에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타인이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타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친구란, 연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비교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넓히는 것일까?

그러한 질문을 던지며 나는 처음으로 인간관계가 넓어졌던 때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던 날을 생각했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던 풋풋한 마음을 생각했다. 나는 왜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지? 그와 나를 비교하고, 누가 더 잘났는지 알기 위해서 사귀려 했나?

아니었다. 내가 친밀한 관계에서 바랐던 것은 따뜻한 지지와 격려였다. 내가 마음을 연 특정 사람들과는 그것이 가능하리라 믿고, 또 그에게도 따뜻한 지지와 격려를 나눠주고 싶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만든 것이다. 어느 한쪽이 잘나거나 못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혼자가 된다거나 떠날지 모른다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오로지 나의 삶을 위해 나만의 노력을 계속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남의 타이밍에 나를 욱여넣지 않아도, 내가 멈추지 않으면 나만의 타이밍은 결국 오기 마련이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 본연의 의미만을 다하면 된다. 자극을 받더라도 그들이 달성한 목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삶의 태도(성실함, 다정함 등)를 나의 삶에도 녹여낸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언제나, 가장 먼저 나를 응원하자. 내 중심을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으로 만들자. 내가 제일 먼저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다 보면 나는 언젠가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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