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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ug 31. 2024

내 속도에 맞추어 걷기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선생님, 전 제가 너무 싫어요."



 청소년 상담 센터에서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을 때마다 그런 말을 많이 했었다. 성인이 되면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이기도 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나는 나를 살려야만 했고 나를 무너뜨려선 안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떠한 쇼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고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게 된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남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닌 내가 나를 살려야 한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고 끝내는 거대한 공포가 되어 나를 집어삼켰다.



'내가 언젠간 얘 하나만 믿고 살아가야 한다고?'



 얼렁뚱땅 살아가는 이 사람 하나만 믿어야 한다니!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뭐가 될 수 있긴 할까? 뭐가 되기 이전에 번듯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는 있을까? 내가 뒤처지면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성가셔할까? 피하려나?  그러면 나는 또 혼자가 되는 건가? 이제 난 어떻게 살지? 나는 이렇게 쭉 답이 없는 채로 살아야 하나?'



끝내는 사소한 것들까지도 자괴감의 씨앗이 되었다.



'그 와중에 배고프다고 또 밥은 먹었어. 이래도 되는 건가? 이럴 시간에 뭘 하고 싶은지 찾아야 되는 거 아니야? 남들은 다 하는 건데 왜 나는 못하지? 난 정말 쓸모없는 사람인가 봐.'



 손을 뻗어도 닿을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인지. 나는 고립되는 것에 대한 걱정에 휘말렸고 나를 비추고 있던 모든 조명이 꺼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남들처럼 가슴이 뛰는 일을 찾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모습에 갑갑함을 느꼈다. 조급함은 점점 커졌지만 내가 걷는 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다. 겨우 불을 붙인 목표도 얼마 가지 않아 픽 꺼져버리고 말았다. 내 생각이 없이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 나를  억지로 욱여넣은 목표가 나를 움직이게 할 리 없었다. 그 꿈이 넣어준 연료는 너무나도 적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내 인생인데 왜 남한테 맞추려고 해?'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본 적이 많지 않았다. 위에서 잔뜩 늘어놓았던 수많은 질문들도 결국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인데 '나'는 없고 '남'만 가득하다. 나에 깊게 파고들지도 않은 상태로 그저 살아오기만 한 것이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간신히 찾아도 실패할까 겁을 내며 불씨를 급히 꺼뜨리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도 마주하게 될 난관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두려워하며 밀어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정말 좋아했던 일도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고, 그랬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내지 못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결정을 짓기도 전에 제 나이에 뭔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조급함에 밀려 급하게 길을 터버린 것이 자기혐오의 화근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히 마음속에서는 그에 대한 반감도 컸을 것이다. 여유롭게 스스로에 대해 탐색해 보지 못한 채로 무언가를 정해버렸으니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는 급하게 뛰어들어와 버렸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그저 시간에 쫓기며.

그렇게 성급한 결정을 내려버린 것에 대한 후회와 원망이  '나 자신이 싫다'라는 말에 섞여 흘러나온 것 같다.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깊게 돌아보고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물론 많이 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시간에 쫓기며 살고 싶지 않다. 정말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찾아보고, 남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이 움직이는 길로 가보고 싶다. 나는 내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으니까.

내게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도 실패도 성공도 전부 나를 쌓아가고 알아가는 한 과정이기에, 모든 과정을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안고서 이제는 정말 날 위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삶을.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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