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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ug 31. 2024

내가 녹아들어 있는 나의 이야기

 검은 글자는 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종이 위에 놓이게 될까? 하얀 백지 위에 한 줄씩 원하는 이야기를 담아가면서 나는 나의 글을 사랑하게 된다.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뭉쳐 있던 생각들이 문장으로 구체화가 되는 이 느낌을 사랑한다.


 그림이든 글이든, 어떠한 창작물에는 창작자의 영혼이 녹아들어 간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느낌을 선호하는지가 보인다. 거친 선과 부드러운 선, 여린 색감과 명료한 색감, 한색을 주로 쓰는가, 난색을 주로 쓰는가.


 글의 주제와 문체에서도 창작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담백한 작품도 있고, 시선을 확 잡아끌며 마음을 정신없이 빨아들이는 강렬한 작품도 있다. 모든 작품에는 각자의 매력이 있고 모두 사랑스럽다.


 나는 글을 때마다 '나'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어렸을 적에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안에서 서사를 풀어내는 것을 즐겼으나 이제는 내가 나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다루는 내용이 극히 한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최대한 나에게 집중을 하고 싶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생각을 품으며 살아왔는지를 눈에 보이는 기록물로 남기고 싶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하면,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나의 기억과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옅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6년간 써 왔던 일기장을 살펴보니 기쁨이나 행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우울'이나 '불안'은 선명히 기록되어 있었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빛나고 있었을 행복한 추억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6년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분명히 한 번이라도 웃었을 텐데.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이 그 안에 있었을 텐데. 떠올릴 실마리가 없으니 기억이 조각조각 흩어져 단편적으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했을 때 나는...


 무서웠다.


 내가 떠올리지 않으면 나의 행복은 결국 없는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지금이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일깨워 줄 수 있다.

"그때 참 좋았지?"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해줄 사람들마저 사라지고 난다면 나의 행복은 오랜 시간을 먹고 흐려져 그저 기억의 저편에서 향기만 남아 머물 것이다.


 살아가며 새로이 쌓일 불안과 우울에 행복이 묻히는 것이 싫었다.


 고작 흐릿하게 남은 향기만으로 행복을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슬펐다.


 그래서 먼 훗날 내가 다시 보았을 때, '그래도 참 행복하게 살았지.' 하며 만족스럽게 웃을 만한 글을 쓰고 싶다.

나를 주인공으로 쓰는, 어쩌면 흔할지도 모르지만 또 마냥 흔하지만은 않은 그런 이야기들.


 내가 많은 이들과 함께 써 내려갈 행복들.

우울과 불안의 틈새에서도 흘러나올 한 줌의 행복들.

그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기록해두고 싶다.

생각날 때마다 꺼내 먹는 달콤한 간식처럼, 두고두고 떠올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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