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진 식사를 떠올려보면, 갓 지어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밥과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국, 향긋한 채소와 적당한 양의 고기, 싱싱한 생선 등이 떠오른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아주 건강한 밥상. '균형 있는 식사'의 보편적인 형상은 나의 머릿속에도 선명한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불안해지면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기 시작한다. 미각도, 후각도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주위를 경계한다. 최근의 나에게는 고기가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불판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볼 때마다 무언가 거북한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좀 더 깊게 파고들자면 고기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고기가 주는 자극 탓이다. 후추와 소금을 뿌려 간단하게 조리했을 뿐인데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불안이 올라왔다. 달고 짠 양념에 조린 것도, 심지어 맛있게 잘 먹던 통조림 햄이나 소시지, 어묵 같은 가공육에도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식성 자체가 바뀐 것이라기보다는 최근 들어 커진 불안이 일시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자꾸 가라앉혀도 다시 일어나고, 마음은 곧 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소화 능력도 자꾸 떨어졌다. 그래서 요리를 하며 '난 나를 돌보고 있어'라는 감각을 깨우고 싶었다. 나를 돌보고 싶기 때문에, 신체에도 큰 무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채소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고 있는데, 채소는 강한 양념을 쓰지 않는 이상 그리 큰 자극을 주지 않으니 요리를 하고 먹을 때 마음이 편하다. 속이 더부룩하거나 탈이 나지도 않는다. 물론 고기가 주는 포만감과는 사뭇 다르고, 배도 금방 꺼진다. 그렇게 속이 허한 느낌이 들 땐 차를 마셔서 부드럽게 빈 곳을 채워준다.
가끔 기름진 음식이 당기긴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불안이 따라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음식이나, 기름진 과자를 먹고 싶어도 견과류와 과일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음식을 먹고 나서는 한 번씩 운동도 하고, 잠들기 전에는 명상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은 내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