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은 평온한가요

by 이지원

파란 여름방학이 저물어간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해 왔던 고양이와의 연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용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앙상하게 마른 등을 쓰다듬고, 전부 다 괜찮을 거라고 그를 위로하고 나서 나는 잠자리에 누웠다. 좋은 것들과의 연은 항상 짧다. 함께 있으면 시곗바늘은 순식간에 한 바퀴를 돈다. 그 한 시간이 쌓여 12년이 흘렀다. 막 처음 만났던 겨울밤,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털에 윤기가 흐르던 그 아이의 몸은 이제 피골이 상접해, 숨만 겨우 쉬고 있다. 거짓말 같다. 나는 이십 대 속을 지나고 있는데.


사실, 이번 여름방학을 그리 잘 보냈던 것 같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대부분의 것들과 멀어진 채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곧 바람이 되어 흩어질 나의 가족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내 삶의 의미마저도 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줌, 아니 그보다도 더 적은 재가 되어 돌아오려나. 나는 아직 더 사랑하고 싶은데, 못해준 것이 너무 많은데, 자꾸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무슨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인지 사실 모르겠다. 나는 그 애가 사람 음식에 입을 대기 시작할 때 나무랐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도 나무랐다. 말을 하지 말고 조용히 치웠으면 될 것을. 동물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

못해준 기억은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사과를 해도 되돌릴 수 없다. 쌕쌕 마른 숨을 내쉬는 그 애를 앞에 두고 아무리 울어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괜찮음을 묻는 말에 아무리 덤덤하게 대답을 해도 가슴이 쓰라린 것은 낫지 않는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덤덤히 일어서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가슴에는 상처가 남는다.


세상이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하는 존재와 언제까지나 붙어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붙잡고 빌어도 떠날 것들은 떠나간다. 그러니 최대한 덜 아프도록 빨리 마음을 정리하고 일어서는 수밖에. 그래서 나는 아픈 고양이의 이야기를 오래 늘어놓은 적이 없다. 늘어놓을 때마다 자꾸만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나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해서, 억지로 시선을 피하며 말을 잇기도 했다. 무너지고 싶어 하는 것을 들킬 것만 같았다. 마음을 전부 털어놓아도 괜찮은 상담실에서도 똑같았다. 울어도 괜찮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게 자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소를 짓는 내가 싫었다. 우는 나도 싫었다. 그래서 도무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가린 채로 테이블만 보며 말했다. 괴로웠다.


딱 하루만,

딱 하루만,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내게 안겨주면 안 되는 걸까.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엇이든.


사실은 욕심을 부리고 싶다.

언제까지나 햇빛을 안고, 사랑하는 것을 보고 싶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면 충분한데.

따스한 체온과 사랑이 담긴 눈빛이면 충분한데.


내 인생이,

당신의 인생이, 평온해지기를.

터지지 않을 사랑만이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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