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난 새벽, 내가 아픈 네 얼굴을 보기 위해 거실로 나왔을 때,
쌕쌕 가쁜 숨을 쉬던 네 가슴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눈을 얼핏 보았을 때
너는 별안간 몸을 벌떡 일으켜 앉고서 나를 마주 보았지.
그제야 네 얼굴이 선명히 보였어.
나는 너를 보고 가슴이 아파서 울고 있는데, 너는 그런 나를 보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살짝 미소를 지었어. 그리고 다가와서 내 무릎에 엎드렸지.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곧 사라질 생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힘찬 심장소리가 작은 진동을 일으켰어.
너는 내 무릎 위에 엎드린 채로, 한참 동안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어. 눈은 게슴츠레하게 뜬 채로.
동물의 말을 완벽히 알지는 못하지만,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어. 울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더 이상 울 수가 없었어. 포근하면서도 목덜미가 아플 정도로 시려서 어떤 표정도 지을 수가 없었어. 네가 곧 떠날 별이라는 걸 몰랐더라면, 나는 단순히 널 귀여워하고, 예뻐하고 말았을 텐데.
그런데 그 새벽의 너는 말이야, 뭔가 달랐어. 평소와 똑같으면서도 어딘가가 조금씩 어긋나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웠어.
턱을 쓰다듬어야만 볼 수 있었던 네 미소가, 내가 딱히 널 쓰다듬지 않았는데도 피어났어. 그리고 그 얼굴로 한참 동안 나를 올려다봤어. 나는 네가 떠날까 봐 울고 있는데, 너무 무서웠는데, 너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나를 봤어. 내가 울다 지쳐 그 자리에 누우니 너는 내 팔에 몸을 비비고 품에 안겼어. 요즘 들어 누구에게도 안기지 않았는데. 너무 이상했어.
한 달 전 새벽에,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네가 내 팔을 베개처럼 벤 채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도 그랬어. 묘한 기분. 그날도 네가 떠날까 봐 두려워서 널 한참 쓰다듬다 잠에 들었을 거야. 항상 내가 불안할 때마다 넌 곁에서 너만의 위로를 전해줬었지.
그런데 지금은 네가 없어.
네가 없으니까, 집안에서도 너의 흔적이 점점 사라져 가.
간식을 담아주던 작은 그릇, 물을 담아주던 그릇, 병이 깊어지면서 더욱 쓰지 않게 되었던 네 화장실, 건강하던 시절 네가 잘 들어가던 바구니.
아무것도 없어. 널 기억해 낼 수 있는 물건이 아무것도 없어.
유일하게 널 담은 물건은 네가 자주 먹던 간식뿐이야. 그것만 주면 너는 눈이 반짝였는데, 그때 네 얼굴이 얼마나 예뻤는지 아니?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똑같아. 사람도 똑같고, 공기도 똑같아. 다 똑같은 이곳에서 네가 나올 것만 같은데, 아무리 간식을 들고 흔들어도 나오질 않아. 어차피 이렇게 떨어질 걸 알았더라면, 먹고 싶어 하는 간식 좀 더 줄 걸 그랬어. 건강할 때 더 안아줄걸. 노트북 위에 올라와서 장난을 쳐도 밀어내지 말 걸.
네가 떠났다는 걸 알고 있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어. 그 새벽에 널 보며 충분히 울었기 때문에, 충분히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에 미련이 없는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닌 것 같아. 그만 생각해야 하는데 계속 떠올라. 오후 네 시에 함께 낮잠을 자고, 내가 네게 자장가를 불러 재우고, 이름을 부르면 높게 대답하던 네 얼굴이 자꾸 떠올라. 참 이상하지. 넌 이미 떠나고 없는데, 난 자꾸 너에게 닿지 않을 후회를 하고, 사과를 해.
기분이 이상해.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너는 내 무릎에 앉아 있었잖아.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에 짧게나마 대답을 하고, 건강하던 시절의 습관대로 내게 안기고, 잠이 들 듯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생명을 이제는 사진과 동영상으로밖에 찾아볼 수가 없어.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널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어.
있잖아,
어제까지는 떠날 네 걱정에 울다가도 널 보러 갈 수 있었는데, 한 번이라도 더 꼭 안아줄 수 있었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울고 있어도 널 다시 안을 방법이 없어.
나는 그냥 살아갈 뿐이야. 기억에 묻어둔 채로 살아갈 뿐이야.
아가,
잘 도착했어?
먼저 간 첫째도 지금쯤 만났을까?
이제 좋아하는 간식도 마음껏 먹고, 포근한 이불 위에서 둘이 신나게 놀아.
이곳 생각은 하지 말고 즐겁게 놀아.
건강하게, 건강하게.
몇 번이나 계절이 돌고,
그리움의 향이 조금 부드럽게 바뀌면,
그때 나는 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살짝 미소를 지을 것도 같아.
내가 떠나는 날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내가 그곳으로 가면 꼭 이야기해 줄게.
그때 우리 너무 즐거웠다고, 꼭 이야기해 줄게.
우리 그땐 재밌게 놀자.
아무 생각 말고, 푹 자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게 놀자.
사랑해. 함께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