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찾는 새벽

by 이지원

새벽에는 정신을 놓고 항상 고양이를 찾아다닌다.

낮에는 집안에 햇볕이 들어온다. 사람의 목소리며 텔레비전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감정을 가린다. 그 무엇도 나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도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아, '어쩌면 난 괜찮아진 게 아닐까?' 하는 꽤 희망적인 물음마저 던지게 만든다. 잘 웃고, 잘 먹고, 덜 울기 때문에, 고양이가 나오는 사진과 영상을 보고 희미하게 웃기라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잠드는 새벽이 찾아오면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꼭 습관처럼 고양이를 찾는다. 어떤 영적인 믿음도 아니고, 떠났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머릿속은 하얗게 물든 채로 고양이를 찾는다. 떠나는 날 새벽에 그랬던 것처럼 고양이가 늘 누워있던 부엌 통로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다. 그러고 앉아 있으면 꼭 눈앞에 보인다. 누워있던 고양이가 벌떡 일어나 앞에 앉는 것이, 그리고 무릎에 오르는 것이.

시선이 닿으면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올린 채 몇 번이나 쓸어내린다.

조금 시간을 보내다 그대로 누워 고양이가 누워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손짓에 다가온 고양이가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비고 그대로 몸을 붙여 눕던 것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지만, 어쩐지 따뜻한 털이 다리에 닿는 것만 같다. 내가 걷는 현실이 기나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날의 기억이 끝나고 나면 일어서서 집안을 조용히 돌아다닌다. 건강하던 시절 곧잘 오르던 소파에 앉아 고양이가 자주 건드렸던 화분을 보기도 하고, 서랍 위에 놓인 핸드백을 고양이의 그림자로 착각해서 반갑게 다가가기도 한다. 베란다와 이어진 창문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빨래건조대의 그림자를 고양이의 것으로 착각한 적도 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면, 어쩐지 등 뒤에서 간식을 달라고 조르는 목소리가 들려 놀란다. 식탁 밑 의자도 하나하나 살핀다. 그러다 고양이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기뻐한 적도 많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식탁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도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온 집안을 돌아다녔는지 몰라 넋을 잃는다. 어떤 목적도, 어떤 또렷한 생각도 없이 캄캄한 집안을 돌아다녔던 것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과 영상을 하나하나 찾아보면 그리움이 옅어질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하나당 길어야 2분 정도인 영상들을 모두 보고 나면 꼭 마음속이 텅 비고, 고양이가 없는 현실을 오히려 더 진하게 느끼게 된다. 영상을 오래 본 날 새벽에는 더 애타게 고양이를 찾는다. 이제는 아무리 부르고 찾아도 다시 안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끼는 고양이 인형을 안고, 생전의 고양이를 쓰다듬고 예뻐하듯이 행동하기도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또 공허함을 느끼고 그만둔다. 어쩐지 인형을 대체품으로 생각하는 것만 같아 미안하기 때문이다.

방문을 닫아두면 자꾸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그것 역시 그리우면서도 무섭다. 내가 무엇을 해야 다시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첫 이별은 그래도 담담히 맞아들였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오래가는지 모르겠다.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가리기 위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착용하지만 음악마저도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가리지는 못한다.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깊이 이해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남겨진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을 알기 때문에 떠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후에 또 겪을 이별이 두려워 잘 살아낼 자신이 없다. 이번에 겪은 이별이 마지막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피하고 싶어진다.


자꾸만, 남기고 간 흔적을 찾는다.

끝없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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