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속에 새긴 사랑

by 이지원

홀린 듯이 스케치북을 펼치고, 좀처럼 쓰지 않던 색연필을 들었다. 고양이를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가장 건강했던 시기에 찍은 사진을 골라 스케치를 시작했다. 손그림을 그릴 때마다 긴장을 해서 완성까지 가는 일이 드물었는데, 오늘은 스케치를 할 때부터 마음이 편안했다.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스케치를 끝내고 나서는 여러 가지 색으로 털을 표현했는데, 하나씩 색을 쌓아갈 때마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 보여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다소곳이 앉아 날 기다리던 모습, 작은 울음소리에 방문을 열면 마치 손님처럼 정중한 자세로 앉아 있던 모습.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정말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해가 지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그림을 완성했는데, 오랫동안 앉아서 고양이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사진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울고 있었지만 동시에 웃고 있기도 했다. 어쩐지, 고양이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림 속 고양이의 머리에 조심히 손가락을 얹어 쓰다듬었다. 종이의 감촉만이 느껴져야 했지만, 짧고 보드라운 털이 느껴졌다. 향긋하고 고소한 특유의 향기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거실을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간단히 물만 마신 뒤에 방으로 돌아왔다. 고양이가 방에서 기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평생 안고 가겠지만, 그래도 그림 덕분에 오늘은 조금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너무 늦은 선물이지만, 우리 고양이도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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