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새벽까지만 해도 곁에 있었던 사랑을 떠나보내고, 익숙한 듯 집을 나섰다.
나무마다 붙은 매미는 울고, 볕이 머리 위로 부서지지만 나는 여름의 숨을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빨리 털어내야 해,라고 스스로를 재촉하지만 한 번 벌어진 마음은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오늘 낮에는 뜨겁지 않은 해를 맞으며 비척비척 걸었다. 희게 물든 머릿속에서 자꾸만 그 애를 떠올리고, 빈 집의 허전함을 떠올렸다.
부엌 앞을 걸을 때마다, 떠나던 날 새벽이 자꾸만 떠올랐다. 무릎에 앉아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고 웃던 얼굴이 아른거렸다. 언제쯤 흐릿해질까 싶다가도 영원히 선명하게 그려지길 바라는 얼굴이었다. 그때가 떠오르면 아직도 무릎과 다리로 가릉거리는 진동이 흘렀다. 아무것도 없는 손에는 따스하고 포근한 털의 감촉이 느껴졌다.
요리를 하기 위해 부엌 수납공간의 문을 열 때면 언제나 고양이가 들어갈 거라 생각하며 문을 급하게 닫았다. 정작 그 애는 이제 떠나고 없는데. 모든 일상에 그 애가 너무 진하게 스며 있었다. 부엌 통로를 지날 때면 그 애가 있던 자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돌아 지나간다. 습관으로 남은 탓이다.
간식과 뜯지 않은 새 모래, 사료는 아직 버려지지 않고 한구석에 정리되어 있다. 간식과 사료를 항상 쓰던 그릇에 조금 덜어서 놔두면 한 번쯤은 들러서 먹고 갈까? 그런 엉뚱한 상상도 하지만 결국 마음속으로 간식을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그리고 만다.
매일같이 땅만 보며 걸었는데,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버스를 탈 때도 이어폰과 휴대전화에 의지하지 않는다. 자리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파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 하얀 구름, 하얀 구름. 너는 가장 넓고 예쁜 구름 속에서 지내고 있겠지.
다시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 또 멍하게 사람 사는 세상을 바라본다. 쨍쨍한 햇볕 밑을 걷다 버스를 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정신이 맑게 개었는데, 오늘은 여전히 멍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지도 몰랐다. 앉을자리가 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버스 안에 있는데, 집에 있어야 할 고양이가 자꾸만 보였다. 고양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와 내 앞에 앉았다. 그 모습을 또 가만히 지켜보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뻔했다.
볼일을 다 보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탈 때, 눈앞이 희게 물들어 버스 입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쉬어가는 목소리 속에 죄송하다는 사과를 담아 연신 뱉어냈다. 무릎 한쪽이 까졌지만 쓰라린지도 모르고 비척비척 걸었다. 내 몸을 내팽개치듯 좌석에 앉히고 나서 또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몸이 사라지고 정신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력이 빠져 침대에 누웠다. 곧바로 목이 아파오고, 열이 끓었다. 몸에 한기가 도니 여름의 더위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겨울, 겨울이 찾아왔다. 모로 누워 고양이가 좋아하던 인형을 끌어안고, 큰 베개 밑에 몸을 밀어 넣은 채로 쪽잠을 자고 일어났다. 이대로 쭉 잠들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고, 여러 사람에게 혼날 것만 같은 생각을 늘어놓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하게라도 웃을 날이 올 거야.
물기 어린 꽃잎이 되어 떨어지는 나의 사랑을 내려다보며, 서툰 위로를 나에게 건넸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마음껏 그리워하고, 삼키지 말고 울자.
하고 싶었던 말도 참지 말고 꺼내자.
이곳에서의 시간은 끝났지만, 앞으로 함께 보낼 시간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영원히 사랑할 내 가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