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지 않은 숨을 쉰 날

by 이지원

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곧바로 죄책감이 찾아왔다.

내 머릿속에 있는 홈으로 낡은 생각이 자꾸만 돌았다. 아주 느리고 천천히. 살아 있는지도 아닌지도 모르게, 끈적한 것이 찾아왔다. 동시에 아주 퍽퍽하고 건조한 것. 느리게 움직이다 멈추고, 끝도 없이 고이는 생각. 몇 번이나 사는 것을 후회하고, 큰 결정을 피하고, 콩보다도 손톱보다도 더 작아져서는 떨고만 있었다.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보며,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택한 사람들, 혹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보고는 내가 얼마나 얕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남겨진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눈을 보고, 텅 빈 얼굴을 보았다. 나는 차마 내가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말조차도 담지 못하고, 함부로 죽겠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로 그들의 어깨와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죽겠다고 말했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죽고자 했던 날을 떠올렸다. 둔중한 소리로 머리가 차고, 복잡한 생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등이 식었다. 수많은 사람을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 서늘했다. 수많은 눈이 등을, 뒤통수를 쏘아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봐, 누군가는 너의 하루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의 끄트머리에 서서, 남의 죽음 따위는 그리지도 못했던 날을 떠올린다.

동시에, 내가 죽음을 입에 올렸던 이유를 떠올린다.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피하고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어서, 마치 열쇠처럼 죽음을 입에 올리고, 손에 쥐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무력해지면 모든 것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픈 얼굴로 떨어지는 부모의 시선을 바라듯이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겁한 변명을 오로지 죽음으로 합리화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뒤에 숨으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얕고 어린 생각이었다.


나는 소중한 가족의 죽음을, 지난달까지만 해도 생생히 살아있던 생명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가슴에 묻었다 해도 떠나간 흔적은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사라지는 것 역시 남겨진 가족에게 같은 충격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게, 너무 뒤늦게 알아버렸다.


나는 죽고 싶은 것이 아니었고,

가족이, 사람이 싫었던 것이 아니었고,

사실은 모두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슬플 뿐이었다.

발을 헛딛는 순간 사람이 떠나갈까 두려울 뿐이었다.

나의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알아도 입 밖으로 내뱉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가장 극단적인 말을 골랐고,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른 채로 이리저리 휘두른 것이다.


여기에,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입을 움직여 말을 건네고, 손을 움직여 글을 써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얕은 숨을 길게 빚어내어 본다.

낡지 않은 숨을 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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