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부스스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새우처럼 등을 말고 앉았다. 온몸이 새벽에 잠겼다. 코끝까지 잠겨도 숨을 쉴 수 있는 바다를 만난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짜고 텁텁한, 어딘가 묵직하고 따끔거리는 기분.
앉은 채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의식적으로 꺼낸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에 가까웠다. 보이지는 않지만 부옇게 머릿속을 채웠다. 어김없이.
허공을 보며 가장 뼈대가 굵은 생각을 추렸는데, 그 안에 오로지 살고 싶다는 열망만이 가득해서 조금 놀랐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졸아들던 삶이었다. 졸아들수록 죽음을 원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는데, 나는 왜 살고 싶어 하는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죽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뱉었던 말속을 헤쳐 날것의 마음을 찾았다. 드문드문 죽음을 떠올렸던 날들이 펼쳐졌고, 그것에 홀려 정말 죽음을 택하려 했던 날도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정말로 죽음에 홀려 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믿었다. 괴로웠기 때문에 편안해지고 싶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싶었다.
그저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이 싫었다. 마음이 울컥울컥 쏟아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전부 쏟아지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무엇도 지켜낼 수 없는, 그 무엇도 막아낼 수 없는 사람.
통제할 수 없는 불안 위에서 날카롭게 튀던 생각이 죽음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불안만 다스릴 수 있다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약간의 희망도 손에 쥐고 있었다.
그 희망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사는 것을 선택했나 보다.
그리고 정말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을 겪은 날, 나는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았다. 뻔하다면 뻔한 방법이지만, 적어도 효과는 있었다.
첫째, 누르지 않고 마음껏 그리워하기. 우울할 땐 마음껏 우울해하기. 빨리 괜찮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았다. 압박감을 느낄수록 소화되어야 할 감정이 단단하게 굳고 뭉치기 때문이었다.
둘째,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현재에 남아보기.
가장 단순한 일부터 천천히 해 보았다. 울고 나면 물 한 컵을 마시고, 부은 눈을 얼음팩으로 가라앉히는 것부터 시작했다. 슬픔에 압도되어 둔해진 감각을 잠시 깨우는 것만으로도 현재에 남을 수 있었다.
그 뒤에는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식사를 했다. 요리를 하는 과정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과거나 미래로 달리지도 않았다.
어떤 활동을 할 기력이 생겼을 땐 그림을 그렸다.
내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과거나 미래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려낼지를 고민하며 스케치를 하고, 색을 고르고 칠하는 과정이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었다.
현재로 돌아오고 나면 정신이 맑게 갠다. 그날 밤에서 다음날 하루 정도는 꽤 건강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 내 마음이 어떤지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니, 언제나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며 살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