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잠들지도 못하고 베개에 머리를 묻은 채 숨만 고르고 있다. 생각이 부풀면 언제나 눈꺼풀이 열린다. 그럴 때마다 지난 꿈을 떠올리는데, 그러다 보면 쉽게 잠을 불러낼 수 있다.
사랑을 받는 꿈을 자주 꾼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작은 아이일 때도 있고, 남성일 때도, 여성일 때도 있다. 단맛이 퍼지는가 하면 씁쓸한 맛만 남기기도 한다.
언제나 꿈은 오묘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다. 꿈속에서 나는 반쯤 흐릿한 상태.
최근 꾸었던 꿈에서는 장신의 여성이 나왔다. 목이 훤히 드러나도록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는데, 마치 밤즁의 강물처럼 어둑한 윤기가 도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두꺼운 화장을 얹어 뽀얀 피부, 검게 칠한 눈가, 길고 빽빽한 속눈썹과 대비되는 새빨간 입술. 얇은 목선. 거기서 조금 더 시선을 끌어내리니 딱 달라붙는 원피스가 눈에 띄었다. 별을 박아둔 듯 광택이 도는 원피스, 까만 스타킹과 굽이 높은 하이힐.
우리가 있는 곳은 낡은 건물 안이었는데, 벽지가 다 뜯어지고 바닥의 타일이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천장 역시 성한 곳이 없어 곳곳에 뚫린 구멍을 통해 거미가 들락날락거리기도 했다. 텁텁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시도 발을 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이 여자 때문일 것이다.
꺼림칙하기 짝이 없는 그곳도 그녀가 있으니 잔잔한 배경처럼 느껴졌다. 물처럼 흐르는 이 배경은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주는 그녀의 외양과 딱 맞아떨어졌다. 그때 나는 구석에 박혀 있는 하얀 옷장에 들어가 있었는데, 내가 옷장에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짙은 화장 사이로 새까만 눈동자가 번뜩였다.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어 짧게 숨만 삼켰다. 딱딱하게 굳은 손으로 옷자락을 부여잡고, 짙은 화장이 덮은 생각을 읽어내려 애썼다.
내가 무언가 알아내기도 전에, 그녀는 우악스럽게 자신을 밀어 넣었다.
그녀의 행동은 빨랐다. 옷장이 휘청이는 것마저도 잊을 정도로. 나는 흐릿한 의식의 틈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자의 입술을 맛보았고, 몸을 훑는 손길을 느꼈다. 길게 자란 손톱이 자꾸만 살갗을 할퀴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멈칫거리며 할퀸 곳을 두어 번 쓰다듬었다. 두껍게 발린 립스틱의 뻣뻣한 쓴맛이 입속으로 밀려들었으나 싫지 않았다. 코가 저릴 정도로 짙은 향수의 냄새도, 따뜻한 곳이라곤 찾을 수 없는 그녀의 몸도.
이 달고 쓴 감정이 오래 머물길 바랄 뿐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그녀는 나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목에 입을 맞추었는데,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이 을씨년스러운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는 혼자 남은 채로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만을 좇았다.
몸 이곳저곳에 아린 상처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