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사랑이라도 받고 싶었던

by 이지원

새 밤이 찾아와, 전등을 꺼뜨리고 누운 채로 천장만 바라보았다. 아마도 곧 잠들고 나면 새 꿈을 맞이하겠지.

꿈속에 머리를 담글 때마다 언제나 사랑을 받는다. 지난 글에서는 그저 꿈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에 그쳤는데,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 내가 꾸는 꿈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었다.

아이, 남성, 여성. 꿈속의 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다. 언제나 '집', '인적이 드문 건물'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데, 대상이 아이일 경우에는 꼭 엄마처럼 안아 달래고, 성인일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든 접촉하게 된다. 과일 씻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구하거나, 말도 없이 손을 붙잡고 내달리거나, 멋대로 스킨십을 하거나.

말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사랑에서 나는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동을 지적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멋대로인 손길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 상황을 인식하고 느낀다기보다는, 마치 그렇게 느끼기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아쉬움을 느낀다.

꿈속의 공간은 꼭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잠들기 전에 편안함을 느꼈다면 꿈속의 집에도 따스하고 포근한 분위기가 감돈다. 따뜻한 오렌지색 조명, 흐릿하게 꽃향기가 풍기는 침대. 등장하는 사람의 행동도 비교적 상냥하다. 여전히 일방적이기는 하지만 그 속도가 느리고, 부드럽다.
가끔 선물을 하나씩 들고 오는데, 달콤한 향을 진하게 풍기는 과일 바구니, 들꽃을 엮어 만든 반지와 분홍빛 깃털을 가장 자주 받았다.

반대로 잠들기 전에 우울이나 불안을 느꼈다면 꿈속의 공간 역시 쓸쓸함이 감돈다. 겨울이라도 온 것처럼 찬바람이 불고, 따스한 조명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다. 싫어하는 벌레나 날카로운 유리조각, 부서진 가구가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곳으로 찾아오는 인물 역시 상냥함을 찾을 수가 없다. 온몸이 얼음처럼 차갑고, 피부 역시 부드럽지 않고 철근처럼 단단하다. 핏기가 없고, 창백하고 푸르다. 차고 거친 얼굴을 맞댈 때마다 나는 숨을 참았다. 나의 숨마저도 몽땅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감정이라곤 티끌만큼도 담겨 있지 않은 눈동자가 내 눈에 맞닿을 때마다 온몸이 굳는다.
내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들은 일방적인 사랑을 밀어 넣는다. 사랑을 나눈다기보다는 마음을 통째로 잡아먹히는 것에 가깝다. 벗어나려 팔다리를 버둥거릴 때마다 짐승의 것과 같은 손톱이 살을 뚫는다.

나는 어쩌면,

그런 설익은 사랑이라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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