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전부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차라리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살려줘, 나를 살려줘. 오늘 나는 몇 번이나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빌었는데, 그 누구도 나를 살려주지 못했다. 애초에 사람에게 기대려 했던 것이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몰라.
이곳에서 나는 수단이다. 수단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아무도 나의 의견 따위는 묻지 않는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있잖아, 나는 언제나 이방인, 외계인인 것만 같아. 우리는 언어가 다르고, 응, 언제나 나 혼자서 헤엄을 치고, 수많은 눈을 마주하고 살아. 나를 사랑해 줘, 나 좀 아껴줘. 나는 살고 싶어.
2년 남짓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나는 언제나 홀로 아가미를 달고 살았다. 왠지 내가 다른 사람인 것만 같은 느낌. 어느 쪽에도 뛰어들 수 없는 사람. 몸이 건강한 사람의 세상에도, (나와는 유형이 다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도 몸을 던질 수가 없다. 잘못된 것 같아, 잘못된 것 같아. 외로워, 외로워.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내가 너무 예민한 거야? 만약 내가 고통에 백 배 더 민감한 사람이라면, 나는 여기선 살 수 없는 거야?
수없이 절망했다. 여기에는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잘못한 사람을 찾는다. 그들이 그렇게 태어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도 나의 잘못이 아닌데, 나는 자꾸 그들의 세상에 발을 담글 적마다 나를 탓한다. 결국 한 사람에게 모든 부담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 구조가 잘못된 거잖아,라고 이성적인 생각을 하려 해도 머리끝까지 화가 밀려든다. 버려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는, 우리는, 모두가 버려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곳도 탓할 수가 없고, 어느 곳에도 하소연할 수가 없어 나는 속 편하게 나를 탓했다. 그러면서도 제발 나를 살려달라고 허공에 빌었다. 이미 죽은 나의 고양이가 보고 싶었다. 여기서 몸을 던져 네가 있는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그로써 오래도록 빠지지 못했던 낮잠에 빠지고, 나의 불안이 이제 행복으로 바뀔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죽어 식은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구역질이 올라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렇지만 너무 외로워. 그래서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다. 이후에는 숨을 쉴 수가 없어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몇 번이나 바닥에 주저앉았다. 춥다. 싸늘하게 식은 가을바람이 싫었다. 날이 밝은 뒤에는 어디에도 가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잠들 때까지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을바람을 먹어 차게 식은 몸을 끌어안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 사랑해 줘. 나를 한껏 사랑해 줘. 내 손이 다시 따뜻해지고, 내 온몸이 다시 새 생명을 찾을 때까지는 내 옆에 있어줘. 나를 혼자 두지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