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에서 벗어나기

by 이지원

언제나 한쪽으로 쏠리고 마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왜 모든 것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기울이며 살아. 언제나 앓아누운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는데, 뻥 뚫린 가슴을 메우려고는 하지 않았다. 모두가 남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줄 알았다. 그야, 말을 통해 남의 배경을 이해하고, 깊이 파고들어 탐구하는 것이 나의 관심 분야였으니까. 말속에 웅크린 마음을 찾아내어 품에 안는 것이 나의 행복이었으니까. 그래야만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육자와 비슷한 얼굴의 사랑을 내어주는 것이 꿈이었다. 신체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났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니, 이제는 내가 베풀 수 있는 형태의 사랑을 나눠주고 싶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언어였고, 정서적인 지지였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언제나 쌉싸름한 슬픔의 사이로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했는데, 그 따뜻한 미소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나를 찾아와 미소를 좀 더 꺼내 보이길 바랐다.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힘차게 움직였다. 정말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며 '보람'에 집착을 하게 되었다. 애초부터 내가 나를 남들에 비해 한참 더 낮은 존재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그를 우상으로 여겼고, 과하게 높이 평가했으며, 결점이란 찾을 수 없다고 믿었다. 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모든 사람은 사랑을 시작할 때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처음 다가왔을 땐 두 팔을 넓게 펼치고, 그 사이로 작은 나를 들어오게 했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처럼, 그 잎과 꽃이 시들어 떨어질 일은 영영 없을 것처럼 대했다. 뜨거운 한여름 볕 따위는 있는지도 모를 만큼 푸르고 시원했다.


여름이 저물고, 이제 가을이 되어 나무의 잎이 졸아들 때가 왔다. 나는 결점 따윈 없어 보였던 이 사랑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이제 그늘에 몸을 들일 때마다 어깨에 깨알 같은 소름이 돋았는데, 그 누구도 나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했다. 고개를 치켜들어야만 볼 수 있었던 그는 어쩐지 아주 작아 보였다. 풍성하게 하늘을 메우고 있던 푸른 나뭇잎이 까슬하게 말라갔다. 곧 겨울이 오면, 그는 더 작아질 테지.


가을이 깊어가도록 나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돌봐야만 그를 살릴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사실은 내가 돌봄을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한여름의 나무가 그리웠기 때문이야. 푸른 향기를 맡으며 그 밑에서 낮잠을 자던 내가 그리웠기 때문이야. 가장 좋았던 날로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야. 그래야만 내가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 몇 번이고 돌보다 보면, 그러다 보면 다시 푸르고 싱그러운 여름날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을 테니까.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작아지고 난 다음에야 거울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내가 없었다. 빼빼 마른 것. 마음의 살과 몸의 살을 전부 나누어줘도 변하지 않았던 것. 그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아직 추운 봄을 지나 여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몰랐다. 가끔은 기다림도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남을 돌보는 것보다 먼저 나를 돌봐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강박이었다. 모든 것이 강박으로 얼룩져 있었다. 내가 이제까지의 인간관계에서 편히 웃지 못했던 것은, 그리고 언제나 어깨를 움츠린 채로 앉아 있었던 이유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사랑은 증명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내가 원하는 돌봄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양분은 내가 가장 잘 안다.


타인은 내가 필요로 하는 양분을 언제나 완벽히 채워줄 수 없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이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관계에서 나를 보호하고, 홀로 있을 때에도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 자신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


1. '나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의무를 부여하자.

나는 이제껏 타인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마음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아는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 따뜻한 위로를 전하려 노력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이제는 내가 가진 그 능력들을 나를 위해 쓸 때가 되었다.

말 그대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썼던 그 많은 노력들을 나에게도 기울이는 것이다.

'나 지금 엄청 지쳐 있구나. 이제 좀 쉬어야겠다.'

'지금은 너무 힘드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너무나도 무르게 느껴져 무시해 왔던 이 말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보자.


2.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좋은 마음가짐이지만, 내가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다. 개인이 가진 감정적 미숙함이나 스트레스까지 모두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이것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내 영역 밖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너무 매몰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격려를 건네고, 다시 내게 돌아가 스스로를 돌보자. 타인이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거나 그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까지 모두 내가 받아 들 필요는 없다. 그것을 해내지 못했을 때에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다. 그 상황에 직접 부딪혀 성장하는 것은 그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3. 기댈 용기를 키워보자.(도움을 요청하는 연습)

이제껏 남에게 기댈 자리를 내어주려 하면서도, 정작 내가 먼저 나서서 '나 지금 너무 힘들어서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라고 먼저 말을 꺼낸 적은 거의 없었다. 적절히 힘든 것을 털어놓는 것은 약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참기보다는 한 번쯤 말을 꺼내보는 것도 괜찮다. 거절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4. 나 자신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여겨보자.

마음이 정신없이 흔들릴 때마다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1)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뭘까?

2)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3)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

그 무엇보다도 나의 행복과 평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자. 내가 편안하지 않으면 남에게도 안정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잘 못해도, 남한테만 잘하면 됐지.'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나 자신에게 쓰던 부정적인 표현을 남에게도 쓰게 되었다. 가장 사랑해야 할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러니 나의 뿌리가 건강해야 건강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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