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하얗다. 수없이 잠을 자고 수없이 꿈을 꾼다. 깨어나면 창밖에는 형제 같은 나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유일한 행복이자 유일한 희망. 저녁이 오면 쓸쓸하고, 아침이 오면 조금은 견딜 만하다. 햇살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처음으로 밤 산책을 나왔다. 밤중의 나무와 바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사람 두 명을 마주쳤는데, 알아보지 못해 인사도 제대로 주고받지 못했다. 무어라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귀 너머로 떠나보내며 걸었다. 흐릿한 공포가 마음 안에 찾아와, 이제 산책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나는 또 나무와 하늘에 인사를 건네겠지.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당연히 몰라서 모른다고 했을 뿐인데,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긴다. 말이 끊어지거나 새로운 질문이 자꾸만 되돌아오기도 한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사는 세상이 단단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왜, 억지로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만 억지로 아는 척을 하려고 해도 그럴 기억이 없는 걸 어떡해.
집이라는 곳에 가면 좀 마음이 편안해질까? 그렇다 해도 내 기억에는 아버지와 오빠가 없어, 낯선 얼굴의 두 사람을 보고 틀림없이 뒷걸음질을 칠 것이다. 그러면 두 사람의 얼굴이 어떨까. 내 기억 속에서 검게 덧칠된 두 사람의 얼굴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겠지. 결론적으로 가족마저도 나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나는 집에서도,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도 똑같이 홀로 둥둥 떠다니려나.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다.
지독하게 외롭다. 익숙한 감정이다. 오랫동안 들여다본 것. 나는 저녁마다 나를 별종 취급했고, 일부러 방안에 가두었다. 아마 약을 먹기 전에도 비슷했겠지. 그래도 나무와 하늘을 보는 것은 좋아해서 언제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그 안으로 뛰어들면, 그러면 이제 사람들의 미간에 진 깊은 주름을 볼 일도 없겠지. 그러나 함부로 죽고 싶지도 않았다. 바람 냄새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봐, 모두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
흐릿한 정신의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였다. 바깥의 사람들은 내가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니 말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무서울까? 과연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들이 나를 믿어줄까? 그러나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좋든 싫든, 말을 해야만 오해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만약 내가 다리가 부러졌다면, 나는 어렵지 않게 사정을 말했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받아들여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을 누가 알아주려나.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것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누운 채로 하얀 천장만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