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있었더라면

by 이지원

의욕이 없어요.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요.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죽일 수가 없어요. 마음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뚫렸어요. 조금이라도 의욕이 있었더라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 텐데. 그럼 새파란 하늘도 원 없이 보고, 살에 닿는 찬바람도 온몸으로 끌어안았을 텐데. 보고 싶었던 이들을 보았을 텐데.

아니, 그보다도 쉴 수 있을 텐데.


시체가 된 것 같아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앉아있는지, 서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내 주변 사람들을 알아볼 수가 없어요.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이 몸 안에 갇혀있는 것 같아요. 숨을 깊게 쉴 수가 없어요.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요. 그나마 병원에 갈 때만큼은 속 시원하게 아픈 곳을 드러낼 수 있었지만 아직 예약일까지는 한참 남았지요. 이 사이에 죽어버리면 모두가 행복할 텐데.

이 약은 나에게는 안 맞는 것 같아요. 행복하지가 않아요. 하늘과 나무와 꽃을 보아도 행복하지가 않아요. 아니, 어쩌면 약 때문이 아니라 병 때문일지도요.

이 감정 위에 올라타면 나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무서워요. 무서워요.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아무도 내 깊은 곳을 어루만지지 못해요. 나는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깊은 곳을 헤매고 있으니까요.

필사적으로 나를 이해하려 할 필요도 없어요. 애써 구원하려 할 필요도 없어요. 바깥에 있는 사람은 나와 달라요. 내가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멀어질 뿐이에요. 내 체중을 온전히 다 실어 사람에게 매달리면 결국 우리 모두가 빠져 죽을 거예요.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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