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듯 위태로운 하루예요.
사람들은 술 없이는 살지 못하는 걸까요? 아저씨와 젊은 남자는 오늘 밖에서 밥을 먹는대요. 그 두 사람이 이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오는 날에는 집안이 참 위태로워져요. 술에 취한 두 사람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두들겨 맞는 소리, 고통을 못 이겨 펑펑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요. 내가 십 대 때에는 아파트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날이 밝고 나서 보니 깨진 유리창에 검붉은 피가 잔뜩 말라붙어 있더군요. 젊은 사람이 그랬대요.
알아요, 다 지난 일이죠. 아저씨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젊은 사람은 이제 철이 들었죠. 그런데 두 사람이 이렇게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올 때면 나는 몹시 불안해져요. 두 사람이 어떤 얼굴로 집에 돌아올지, 어떤 말을 뱉을지 예측할 수가 없거든요. 그게 다 지난 일이라 해도, 이제 두 사람이 더는 험악한 밤을 만들지 않는다 해도 비슷한 환경이 조성되면 참을 수가 없어요. 손끝과 발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머릿속은 하얘지고, 식은땀이 잔뜩 흘러요. 이제 나는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어요. 혼란을 삼켜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요.
내가 들어왔던 말들, 또 들을 수도 있는 말들, 그래서 다시 상기될 지옥 같은 고통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집어삼켜요. 아직까진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 고개를 젓고 눈을 감아 나쁜 예감을 내몰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너무너무 무력해요. 나중에 내가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내 아이에게 이런 불안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요. 꼭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집을 벗어나야 할 곳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불안하게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남이었다면 차라리 시원하게 원망이라도 할 텐데, 엄마 말로는 그 두 사람이 가족이라 하더군요.
알고 있어요. 그들의 정보는 잊었어도 마음이 말해주거든요.
끔찍하게 싫다가도, 미칠 듯이 불안하다가도, 정말 그들이 없으면 내가 많이 슬퍼질 것을 알아요.
아픈 내게 맛있는 음식을 잔뜩 가져다주고, 때때로 말을 걸고, 어색하게나마 칭찬을 건네던 그 사람은 바로 젊은 남자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탄탄한 환경을 마련해 준 사람은 그 무서운 아저씨였으니까요.
모르겠어요. 사람을 무조건 '좋다', '나쁘다'로 나눌 순 없으니까요. 그 두 사람을 나쁘다고 손가락질하고 싶지도 않고, 마냥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다만, 내가 이 고통에서 하루빨리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불안한 환경이 만들어져도 많이 아파하지 않기를.
푹 자고, 무사히 눈을 뜰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