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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Oct 02. 2024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아프지 않지만 아픈.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우울의 한가운데에 손발이 사로잡힌 채로 돌고만 있었다.


 삼삼하면서도 짠맛이 그득한 하루를 보냈다. 며칠 동안 머리를 부여잡게 만들었던 감기가 지독한 고집을 부리며 옷자락을 붙잡고 있어서 코를 훌쩍일 수밖에는 없었다. 약을 먹고 한숨 푹 자려고 했더니만 그새 내성이 생긴 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감기기운은 싹 가셨는데 말이다. 얕은 한숨을 쉬고 빈 약봉투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앉은 채로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입맛이 영 없었다. 푸석한 학식에 눈길을 한 번 주고 후식으로 나온 사과 푸딩만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하얗게 헐어버린 잇몸이 쓰렸다. 음식을 삼키는 것이 버거워 남은 것들은 전부 국그릇에 몰아넣고 치워버렸다. 가슴이 또다시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샤워를 했다. 수용성도 지용성도 아닌 우울은 또다시 등을 타고 기어올랐다. 김이 서려 모습이 보이지도 않을 거울 안에서 자꾸만 과거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침대 구석에 앉아 몸에 흠집을 내던 괴물이 보였다. 꾹꾹 누르고 새기며 상처 위로 아픈 눈물을 떨구던 불쌍한 괴물. 새롭게 새긴 상처의 개수를 세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끝이었던 생명체였다. 딱지가 앉아 만질 때마다 거칠거칠하던, 어린 나무와도 같았던 팔을 쓰다듬으면서.


 누가 볼까 싶어 때수건으로 팔을 문질러대곤 했었다. 상처가 때수건 하나로 말끔히 떨어져 나간다면 의사가 필요 없겠지. 살이 벌겋게 물들도록 팔을 문질러대도 내가 새긴 흔적이 사라지지 않자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었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던 물인지, 눈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될 정도로.


 다 잊은 줄만 알았다.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게 된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혼자 서는 것이 많이 버거운 모양이다. 그런 것을 실감할 때마다 점점 퇴행을 하는 것만 같아 무서워지기만 한다. 기대면 안 되는 나이가 되고 있는데 자꾸만 기대려 하는 것이 싫다. 그렇지만 이제는 혼자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원망을 몸에 새기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된다 해도 사람들은 물러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르지 않고 분출하면 내가 원하는 것은 영원히 이룰 수 없다. 그러니 입술을 물어 가며 참을 수밖에.


 부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다. 곁에 더 있어주었으면 한다는 것도 떠나지 말아 달라는 말도 부담이 될까 봐 삼켜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붙잡는다 해도 시간은 흐를 것이고 그 뒤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시간조차도 알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도 때가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나서는 스스로를 다그치고 짓누르며 살아왔다. 억압의 결과는 팔 한쪽에 한동안 남아있었다. 지금은 모두 아물어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지만.


 병원을 가면 분명히 '증'이 붙어 나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무서웠으니까. 나는 분명히 극복할 수 있는데 자꾸만 어떤 수단에 의존하다 보면 영영 떼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병이라는 말 뒤에 숨어 나의 게으름을 정말로 합리화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떼어내고 싶어 하면서도 떼어내는 것을 무서워하기도 했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순간 나는 정말 답도 없는 낙오자가 될 것만 같아서.  병을 핑계로 이루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눈을 뜨고 달려들 것만 같아서.


 우울은 과연 약점인 걸까? 나는 자꾸만 나의 약한 부분을 글감으로 써먹고 있는 것만 같다. 실제로는 일상생활도 멀쩡히 하고 있으면서 백지 앞에만 오면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가. 멀쩡하다는 게 정말로 멀쩡한 건지 멀쩡한 척을 하는 건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어느 쪽이든 일단 멀쩡한 느낌을 주는 것이 좋았다. 멍하니 우울에 빠져도 어찌 되었든 이것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내가 나를 상대로 자꾸만 속임수를 쓰는 건지, 그것 역시도 알아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제는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는 않으니까.


 내일도 갈라진 바위 틈새로 해가 흘러나오겠지.

그런 막연한 믿음으로 생각을 매듭짓고 잠에 빠져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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