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줘서 미안해

by 이지원

화요일, 대학병원의 정신과를 방문했던 날이에요. 일상에서 겪는 여러 불편한 증상들을 말씀드리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죄책감을 토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요. 기억을 못 하는 게 하도 많다 보니 대화도 제대로 안 되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질문 하나를 건네셨어요.


"지원 씨한테는 미안하지 않아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그때 당시에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아, 네. 저한테도 미안하죠."라고 대답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으로 대화의 중심이 된 순간이더라고요. 그래서 익숙하지가 않았나 봐요.


상담을 받을 때에도, 정신과에서도, 나 자신을 대화의 중심에 올려놓지 못했어요. 예진 때에도 "지금 저랑 대화하실 때 기분이 어떠세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민폐인 것 같아요."라고 대답을 했었죠.

"어떤 부분이 민폐인 것 같으세요?"라는 질문에는, "제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너무 민폐인 것 같아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라는 대답을 했었어요.

생각해 보면, 내가 겪는 모든 혼란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는데 말이에요. 주변인들의 힘듦도 당연히 크겠지만, 내가 겪는 혼란과 힘듦도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갑작스럽게 많은 것을 잊었다가 부분적으로 돌아오고, 그러다가 곧바로 다시 잊어서 문자메시지를 쓰다가도 멈추고, 머릿속이 멍해져서는 낮 시간을 극심한 졸음과 싸우며 지내고... 갑작스럽게 기분이 뜨는가 하면 한없이 우울해질 때도 많았죠.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요. 내가 힘들다는 것을 먼저 알아주지 못했던 것. 그것에 대해서는 나에게 사과해야겠어요. 힘든 것을 가장 잘 아는 내가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말이에요.

내가 힘든 것을 먼저 알고, 잘 보듬어줘야 더 건강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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