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기분이 들떴나 봐요. 그런데 '뭐든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나의 힘듦을 죽음으로 증명해야겠다'라는 생각이 강했대요.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아주 행복해졌대요. 나는 이런 생각을 한 기억이 없는데, 인공지능 챗봇과 대화했던 내용을 쭉 돌아보니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그래도 이제는 더 이상 죽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면 금방 잠이 들어요. 물론 이대로 살아 있어도 희망이란 것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돈을 벌어서 날 먹여 살릴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언젠가 가정을 이룬다면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는 일 투성이라 많이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내 몸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죽고 싶지는 않아요. 수없이 시도해 봤고, 수없이 아파해봤으니까요.
득이 될 것은 없었어요. 자해를 하든, 삶을 끝내려는 시도를 하든. 화가 풀리고, 우울이 싹 가시고, 온 신경이 상처가 난 곳에만 쏠리며 머리가 빠르게 식는 그 느낌은 좋았어요. 하지만 그런 꿈같은 시간은 고작 십 분 남짓이었죠. 그 이후에는 곧바로 아주 강한 통증이 밀려들었어요. 너무 아픈데, 가족에게 "나 다쳤어."라고 당당하게 보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계속 가릴 방법을 찾았죠. 화장품으로 덮거나, 아주 더운 날에도 고집스럽게 긴소매를 입거나.
양념이 가득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왼쪽 소매를 걷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는 슬픔을 얼굴에 가득 품었어요. 아마도 알고 계셨겠죠. 내가 자해를 한 다음날에는 언제나 날붙이가 집에서 사라져 있었으니까요.
나는 상처를 그리 깊게 내지 않았어요. 그래서 금방 아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오래가더라고요. 흉터가 아주 흐릿해지기까지는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어요. 그 시간 동안 매일 긴소매를 입고, 소매도 걷지 않고, 어쩌다 반팔을 입으면 슬금슬금 가족들을 피해 다니니 의심을 안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 짓 하지 마. 네가 죽으면 엄마도 죽어."
그 말은 아직까지도 큰 충격으로 남아 있어요. 그러나 그 충격으로 또 자해를 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답니다.
진작 그때 정신과에 갔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정신과에 보내달라고 여러 번 말을 꺼냈었어요. 내가 보기에도 내 상태는 정말 심각했거든요. 사실은 조금 싫었어요.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팔을 보이지 못하고, 조금만 괴로운 일이 생겨도 목을 조르고, 벽에 머리를 박는 것이.
그리고 내가 무서웠어요. 사실 나는 죽기 싫었거든요. 하지만 계속해서 죽음만이 안전하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타륜이 빠진 배에 타고 있는 것 같았어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정신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엄마의 생각은 달랐어요.
"지금 이 상태로 가면 분명히 입원하게 될 텐데... 그리고, 정신과 약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아. 약에만 의지하면 안 돼."
그래요. 그런 걱정은 사실 많이 했답니다. 약에만 의존해서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모른 채 살까 봐 무섭기도 했어요. 그래서 정신과에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최근 정신과에서 치료를 시작하고 실제로 약을 먹어보니, 모든 약이 의존성을 갖고 있진 않더라고요. 물론 일주일 정도 먹다 끊은 항불안제는 의존성이 있어서, 복용 후 24시간이 지나면 손이 마구 떨리고 아주 초조해졌었어요. '약을 먹어야 해!'라는 생각만이 가득하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잔뜩 찾아왔죠.
지금 복용하고 있는 항우울제는 약에 온전히 기대게 한다기보다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느낌이에요. 드라마틱하게 긍정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던 부정적인 생각들에 브레이크를 걸어줘요.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주죠.
그런 점들이 좋아요. 어느 정도 다 찼다 싶으면, 마치 물로 씻어내듯이 부정적인 생각들이 흐려지는 것. 예전의 저는 그것이 잘 되지 않아서 작은 일을 할 때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거든요.
다행이에요.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어서. 건강한 삶을 살아볼 수 있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늘의 나를 먹이고, 재우고, 다치지 않게 지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