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큰 대학병원의 정신과에 가요. 심리 검사를 받기로 했거든요. 오래오래 종이와 함께 있겠지요? 오랫동안 진득하게 앉아서,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일 거예요. 골똘히 들여다보는 것이 참 오랜만이라 떨리기도 하네요. 내가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어떤 것들이 그리 힘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한 달 전에 약을 먹기 시작하며 괴로운 기억이 전부 사라졌어요. 그렇지만 뭔지 잘 몰라도 느낌은 남아있어요. 예를 들면, 이 집안에 다른 동물 두 마리가 더 살았던 것 같은 느낌, 낯익은 아저씨, 낯익은 이름.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을 때의 기억이 대부분 사라진다던데, 그게 정말인가 봐요. 오래 우울증과 함께하며, 완전히 하나로 스며들어버린 채로 살고 있었겠지요. 평생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채로 살다 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하늘이 저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고 싶으셨나 봐요. 제가 죽음을 원할 때마다 세상은 전부 각자만의 방식으로 저를 건져 올리고 있었어요. 처음으로 창문 앞에 섰을 땐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었어요. 새파란 가을 하늘이 얼마나 예뻤는지, 손으로 뜯어 던진 듯한 구름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렇게 오래 하늘을 바라보았던 건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렸답니다. 그렇게 차고 생생한 바람과 하늘을 마주한 것이 기뻤어요. 그 속에 몸을 던지려 했던 것도 후회했지요.
두 번째로 죽음을 바라보았을 땐 그냥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나는 분명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음의 문턱 앞에 서니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거예요. 내가 보았던 파란 숲, 하얗고 예쁜 들꽃, 나비, 길가에서 만났던 고양이들... 나를 웃게 해 주었던 모든 것들이 떠올랐어요.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 여기에 살아있어요. 그리고 이제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도 알 수 있어요. 나는 충분히 빛나고, 충분히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것을요.
나는 어린 나를 보며 어떤 연민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더라고요.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예쁜 꽃을 보여주며 많이 웃게 해주고 싶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놀고 싶다.'
거기에 내 진짜 마음이 적혀 있었어요. 처음부터 나는 나를 사랑했어요.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었고, 아낌없이 사랑을 안겨주고 싶었어요. 오랫동안 나를 미워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깊은 강박으로 인해 나 자신을 제쳐두어서 우울이 찾아온 걸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이 조금 멀어질 땐 나를 사랑하면 외롭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그땐 몰랐지요. 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걸요.
그래도 우울의 끝에 닿아본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끝에 닿아봤기에 다시 헤엄쳐 올라올 수 있는 거니까요. 더 깊어지기 전에 병원의 도움을 받아서 다행이에요. 맑은 눈으로 지구를 바라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