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2달째 기록

by 이지원

오늘은 가진 돈을 몽땅 써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어요. 깊은 우울을 겪고 나면 꼭 이렇게 반동처럼 들뜨기 시작해요. 아주 먼 곳에서 배부르게 밥을 먹고, 숙소에서 홀로 잠을 자는 것까지 계획했어요. 돈이 다 떨어지면 굶어야지. 그러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생각 속에 나를 던지고, 들떠서 실컷 웃다가 곧바로 엉엉 울어버렸어요.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왔어요.


내가 우울증에 걸리고 나서부터, 우리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 셋'과 '우울증 환자 하나'로 갈라졌어요. 오늘 아침의 일 때문에 나에게 엄마가 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파도에 휩쓸려 버린 듯한 이 느낌은 몇 번을 겪어도 꺼림칙해요. 지구에 홀로 남은 것 같아요.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병자! 그 단어로밖에 나를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적어도 지금은 말이에요. 내 안에 넓은 우주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그걸 바라볼 힘이 없어요. 우울에 지지 않도록 버틸 힘도 없어요. 가장 보통의 마음을 가졌던 것도 아주 옛날 일이에요. 여덟 살 때부터 죽음을 입에 담았으니 말이에요.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꼭 안아줄 거예요. 단순한 투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가족들의 등이 왜 이리 멀게 느껴질까요? 내 걸음은 진득한 우울이 들러붙어 아주 느려졌는데, 가족들의 걸음은 더 빨라져서 자꾸만 나를 앞서 가요. 조금만 천천히 가, 나는 아직 거길 못 가. 나 아파. 그렇게 말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보통 사람들 기준의 대답일 뿐이에요.


"네 동생은 머리가 이상해져서..."

"에스컬레이터는 그냥 타면 되지, 그게 뭐가 힘드니?"

"쟤는 스물셋이나 되어서 면접도 스스로 못 가?"


알죠. 그 말들의 의도는 서툰 걱정과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그저 표현 방식이 부드럽지 못해서 그렇다는 걸. 그런데, 그냥 그렇게 삼키기에는 너무 아픈 말들이었어요. 아픈 말 너머의 의미를 해석하기에는 내가 아직 많이 아파요.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하는걸요.


'나는 머리가 이상해.'

'에스컬레이터는 그냥 타면 되지, 그게 뭐가 힘들다고...'

'스물셋이나 되어서 면접도 스스로 못 가는구나...'


그들이 했던 말은 내가 나에게 하는 말과 똑같아요. 내 속에서 올라오는 말들이 타인의 입에서 나올 때, 정말 그렇게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 괴로워요.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속이 무너져요. 아무리 내가 아프다고 말해도 그들에게는 닿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마음을 닫게 되어요.


그래도 내가 나를 더 보듬어 줄 수밖에는 없겠죠. 꼭 안아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줘야겠죠. 내 아픔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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