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슬픔은 나쁜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깊이 가라앉고 있다. 이유는 모른다.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슬프면 안 된다는 것은 누가 만들어낸 걸까? 왜 슬픔을 이리도 껄끄럽게 생각하는 걸까? 마음껏 느껴도 괜찮은 감정이라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되는데, 자꾸만 슬픔을 가라앉히려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싫다.
약이 효과가 없다. 그런 날도 있지. 가볍게 생각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자꾸만 좋지 않은 생각이 든다. 여기에 있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을 자꾸만 머릿속으로 밀어 넣는다. 병이니까 이유도 없다. 취업이 되지 않아서 슬픈 것, 사람을 기억할 수 없어 슬픈 것. 그것들이 아주 작아 보일 정도로 큰 슬픔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싫은 기분이다. 이 기분마저도 전부 잊고 싶다. 하지만 잊을 수가 없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진다.
약을 몽땅 입에 털어 넣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기억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죽고 싶다는 이 마음과 강한 충동을, 그 방법까지 자세하게 생각하고야 마는 머릿속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캄캄하다. 곁에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누구도 기억할 수가 없다. 이름을 입에 담을 수도 없고, 얼굴을 떠올릴 수도 없다. 사람을 담은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 그 안의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할 수가 없다. 문자 메시지를 보아도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잊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낮에 보았던 파란 하늘을 잊었다. 생생하게 느껴지던 감각도 잊었다. 어딘가 먼 곳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다. 살고 싶다. 간절하게 살고 싶다. 이렇게 모든 것을 토해내면 좀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