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랑을 갈구할까

by 이지원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인 아버지는 언제나 말씀을 부드럽게 하시는 법이 없었다. "이것 좀 해주겠니?" 보다는 "야, 이것 좀 해!"라고 명령했고, 저녁을 먹고 나서 식탁을 다 같이 치운다거나 설거지를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언제나 저녁을 드시고 나서는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소파에 누운 채로 리모컨을 눌렀다. 내가 그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어 아버지께 "다 같이 먹었는데, 같이 치워요."라고 말하면, "야, 나는 돈 벌어오잖아!"라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화를 내곤 했다.


그런 것쯤이야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해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른 아침에 나가서 저녁때까지 일을 하시니 쉬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부엌에서 설거지까지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억눌렀던 화를 이곳저곳에 풀어헤쳤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제나 집안 구석구석에 욕을 바르고 사람들을 손가락질했는데, 그게 도가 지나쳐서 다른 가족들을 상처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 새카만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해가 찾아오면 아버지는 깨끗이 잊었다. 벽과 천장까지 튀었던 더러운 욕을, 귀가 울리도록 질렀던 고함을, 어렵지 않게 치켜들었던 주먹을.


어머니는 아버지의 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받아주셨다. 욕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늦게 들어온 오빠를 향해 주먹을 치켜들든, 온 힘으로 아버지를 막아내고, 어린아이를 어르듯 아버지를 달랬다. 그리고 소란이 가라앉은 거실에서 조용히 울거나, 허탈한 얼굴로 허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어머니께 "왜 아버지랑 헤어지지 않아?"라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니,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네 아빠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아니까."라는 알쏭달쏭한 말만 되돌려 줄 뿐이었다.


그래서 술에 취한 사람, 그리고 난폭함을 품은 남자에 대한 공포심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내 마음에 각인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 환경 속에서 삶을 보내며 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 두려움, 부드러운 사랑에 대한 갈망을 품었다.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특유의 억척스러움을 통해 안정적인 받침대를 만든 아버지였지만, 정서적인 사랑을 충족해주지는 못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것 역시 사랑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역시 빈 부분이 채워지지 않았다. 당장 오늘만 해도 개 사료 자리가 바뀌어 허둥대니 "야, 여기 있잖아!"라고 화를 내던 아버지였다. 정말이지 정을 붙이려야 붙일 수가 없다. 나는 조금 더 다정한 남편을 만나야지. 그러니까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잘근잘근 씹어 가며 "예, 압니다."라는 대답으로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조금 더 다정한 남자가 있을 테지.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이 모든 남자의 모습일 리가 없지. 그럴 때마다 밖을 나간다. 밖을 나가서, 다정한 사랑을 전하는 커플, 즐거운 얼굴로 함께 운동을 나온 부부,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부모님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본다. 그러면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인해 들썽이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부족한 모습을 보더라도 타박하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것. 아버지는 그런 것을 배우지 못한 세대고,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렸으니 나라도 더 많이 배워야지. 더 많이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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